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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세계] '언니네 이발관' 장렬한 마침표

  • 입력 : 2017.06.02 16:03:50   수정 :2017.06.02 16: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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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인간에게 창작의 에너지는, 안타깝게도 젊은 날에 만개하고 사라진다. 음악은 특히 그렇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음악가가 공연할 때 첫 번째 히트곡이 마지막 곡이 된다. 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앨범들은 창작자의 초기 앨범들이다. 여름철에 꽃을 피우고 시드는 식물들과 같다는 생각에 때로는 애잔해진다. 그러나 상록수 같은 이들이 있다. 언니네 이발관이 그런 사례의 정확한 경우다. 인디라는 단어가 아직 생소하기만 했던 1996년, `비둘기는 하늘의 쥐`로 데뷔했던 그들에게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건 2008년 `가장 보통의 존재`였다. 1997년 2집, 2002년 3집, 2004년 4집에 이어 내놨던 앨범이었다.

나는 그 앨범을 처음 듣던 날, 이렇게 적었다.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어느 화가의, 연대기순으로 배치된 화집을 보는 기분이 든다." 글에 쓰지는 않았지만 그 앨범을 처음 들었던 순간의 공기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첫 해였으며 아직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없던 그때다. 그리고, 지금까지 10만장이 조용히 팔렸다. 온라인 말고, 음반만 그렇게 팔렸다. 그렇게 9년이 흘렀다. 정권이 두 번 바뀌었다.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홀로 있는 사람들`은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이다. 이 앨범을 끝으로 이 팀은 해체하겠노라 선언했다. 앨범을 들으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인 이석원은 완벽주의자다. 앨범 하나를 낼 때마다 그의 바이오 수치는 위험으로 치닫는다. 정신건강은 파괴된다. 인생을 갈아 넣고 수명을 바쳐 앨범을 만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완벽주의자가 주변인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는지를. `가장 보통의 존재`가 증명한다. `홀로 있는 사람들`은 그 이상의 증거다.

인생이란 거창한 단어를 갈아 넣어 만들었다 해도 부족하지 않은 앨범이다. 작업 후기를 이석원에게 들었다. 토할 뻔했다. 그랑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그렇게 괴롭히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박살내며 만든 이 앨범은, 그저 들을 뿐인 이들에게는 완벽한 만족을 선사한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한 편의 영화이자 소설이었다. 모든 노래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전체적으로 하나의 틀이 되는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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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언니네 이발관
`홀로 있는 사람들`은 그 반대편에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빛나는 옴니버스다. 모든 노래가 개별적인, 완결적인 서사를 가진다. 몇 개의 노래를 합쳐 하나의 노래로 만든 것 같다. 한 곡이 끝나면 나오는 다음 곡은, 모두가 다른 앨범의 첫 곡처럼 들린다. 아이유와 함께 부른 `누구나 아는 비밀`은 조성만 아홉 번 바뀐다. 세 개 이상의 멜로디 덩어리가 뭉쳐 하나의 노래가 된다. 지루하지 않다. 낯설지 않다. 그뿐이 아니다. 많은 곡들이 5분을 넘어가지만 2분 남짓하게 들린다. 이른바 무한 반복으로 들어도 그때마다 새롭다. 지난 다섯 장의 앨범에서 들을 수 없었던, 언니네 이발관에 기대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마치 그들이 늘 해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스트리밍의 시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앨범`의 가치가 어떤 필설을 넘어 곡마다 스며 있다.

몇 시간이고 이 앨범을 들으면 다시 한 번 이 앨범이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이 떠오를 것이다. 한숨짓게 된다. 이 거대하고 장렬하며 아름다운 마침표 뒤에 다른 문장을 잇게 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이 더 이상 밴드 음악을 안 듣는다는 걸, 힙합과 EDM이 트렌드라는 걸 언니네 이발관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걸 공유하고 싶어진다. 7년의 곡 작업, 1년의 레코딩 동안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정신을 달래고 관계를 결합시키고 싶어진다. 가정법원 이혼 소송에서 조정기를 명하듯 나에게 의사봉이 있다면 망치를 두드리며 선고할 것이다. 끝을 허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유행가가 아닌, 이런 명반을 내놓은 이들의 직무유기라고. 이런 앨범을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건, 단언컨대 축복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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