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오피니언

[세상읽기] '바램'과 '바람'

  • 입력 : 2017.05.17 17:54:36   수정 :2017.05.17 18:12:48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330342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바램과 바람은 전혀 다른 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바램과 바람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바램은 `바래다`에서 온 말이고 바람은 `바라다`에서 온 말이다. 햇볕과 습기에 오래 노출되어 색이 변하는 것을 뜻할 때 `바래다`를 쓰고 새로운 무언가를 희망하는 의미로 `바라다`를 쓴다. 의미가 전혀 다르다.

햇빛에 오래 노출된 옷의 색이 바래는 원인은 햇빛 속의 광자가 색을 내는 물질의 분자 결합을 끊어서 물질이 하얗게 보이기 때문이다. 착색에 사용되는 유기 분자는 단일 결합과 이중 결합이 반복되는 복합 고분자 사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슬의 길이에 따라 흡수되는 빛의 파장이 다르다. 적색 안료는 이중 결합이 많아지면 적색을 잘 흡수하여 노랗게 보인다. 청색과 녹색 안료는 빛의 흡수나 반사를 조절하는 특정 원자 그룹으로 이루어진 발색단을 가지고 있다. 안료의 이중 결합이나 발색단이 깨지면 가시광선을 흡수할 수 없어 색을 띨 수 없다. 집에서 탈색을 위해 사용하는 표백제는 안료 분자 결합을 화학적으로 분해하여 가시광선을 흡수하지 못해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이게 한다. 햇빛도 마찬가지로 높은 에너지의 광자가 유기 분자를 분해하여 옷이 탈색된다. 이것이 옷의 빛깔이 햇빛에 의해 바래지는 과학적 원리이다.

빛이 바래지는 현상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분자가 자외선이나 가시광선을 흡수하면 분자의 전자가 들뜨게 된다. 이렇게 들뜬 전자 때문에 분자 일부는 분해되거나 구조변화를 일으키기도 하며 흡수된 빛을 열에너지로 내놓기도 하고 형광이라는 빛을 내기도 한다. 형광의 변화를 정밀하게 관찰하면 세포나 조직 안에서 특정 분자의 결합이나 확산을 자세히 연구할 수 있다.

`바라다`에서 파생된 `바람`을 `바램`으로 쓰는 경향은 유사한 발음 때문이다. 한글 맞춤법 제1장 제1항에 따르면,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것이 한글 맞춤법의 대원칙이다.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으면 유사한 단어를 쉽게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법에 맞도록 써서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희망을 뜻하는 단어는 어법에 맞도록 `바람`이라고 써야 한다.

`바래다`는 멀리 떠나는 누군가를 배웅하고 바라볼 때도 쓴다. 그리고 `바라다`는 어떤 것을 향하여 간절히 바라볼 때도 쓴다. 바램이 옛것을 떠나 보내는 의미가 있다면 바람은 앞으로 올 새것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바램이 옛것이라면 바람은 새것에 대한 말이다.

공자의 말씀에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한다`라는 뜻의 `거고취신(去故取新)`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바뀌니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바랜` 것은 버리고 `바란` 것만 이루어지고 있다. 한 사람이 바뀌면 될 것을. 너무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바랜 것을 버려야 새것이 될 수 있다. 국가의 기틀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위협에 지혜롭게 맞서야 한다. 국가의 미래는 희망을 품은 미지의 땅을 향한 탐험과 같다.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을 얻으려면 모든 여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늘 곳곳에 실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 배를 탔으니 배 안의 모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산적한 문제가 많아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를 풀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문제가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누구나 한결같은 바람은 각자 새로운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과학자로서 소박한 바람을 하나 적어 보면, 이제는 마음 편하게 과학만 생각하고 새로운 과학의 탐험에 집중하고 싶다. 각자의 바람이 희망의 씨앗 되어 오월의 민주주의 햇살 아래 울창한 숲을 이루고 늘 푸르른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나라다운 나라가 필요한 것이다.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