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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아버지 수업

  • 입력 : 2017.04.20 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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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 수사자는 초원의 지배자로 무리 위에 군림한다. 사냥해 온 먹이는 그가 먼저 배를 채운 뒤에야 식구들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늙어 기력이 쇠하면 처지는 급변한다. 젊은 사자들에게 밀려난 늙은 수사자는 홀로 초원을 떠돌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떠돌이 늙은 수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많은 아버지는 노래방에서 절규하듯 `먹이를 찾아 눈 덮인 산 정상에 오르는 표범`을 부르며 자신과 동일시하곤 했다. 바람처럼 길을 떠나는 것은 그 시대 아버지들의 로망이자 서글픈 초상이기도 했다. 어머니들이 온 가족이 흘러드는 강이라면 아버지들은 외롭게 힘든 일상을 꾸려 가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존재였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 사자같이 엄한 가부장이 설 땅은 좁아졌다. 5월 가정의 달이 다가오지만 아버지들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가족 간 대화에서도 소외된다.

어느 통계에서 보니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아버지와 의논하겠다는 청소년은 4%에 불과했다. 또 고교생 다섯 명 중 한 명은 아버지와 하루에 1분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의미한 존재로 밀려난 아버지들은 늙은 수사자처럼 가정 밖을 떠돌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아버지상이 바뀌었다면 아버지들도 변화해야 한다. `아버지 없는 사회`라는 글에서 이어령 선생은 "어머니는 자연적 존재이지만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창조된 존재"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사회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제는 사회가 나서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아버지가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한다. 서초구는 시대적 요구에 맞춰 지난해 전국 자치단체 최초로 `아버지센터`를 설립했다. 아침편지문화재단의 고도원 씨가 운영을 맡은 `아버지센터`는 아버지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홈 베이커링, 실내 가드닝,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버지들은 가족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법을 배운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단연 `아빠는 최고 요리사`다.
아내가 밥상 차려 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차리고 아이에게도 기쁨을 선사하는 맛깔스러운 아버지 수업이다. 수강 신청이 한두 달씩 밀릴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행복은 식탁에서 나온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릴 줄 아는 멋있는 남편과 친구 같은 아버지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라이언 킹`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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