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매경데스크 전병득

[매경데스크] 남북경협의 '삼세판'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31503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요즘 중소기업인들 모임에서 화제는 단연 북한이다. 남북 경제협력 관련 기업 주가가 상한가를 치고, 북한 시장이 어떻게 열릴지 기대에 들떠 있다. 20년 전에도 그랬다. 1998년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때도 지금처럼 북한 미지의 땅을 개발하는 꿈을 꿨다.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김정일 두 정상이 만난 이후 제법 많은 기자들이 평양을 밟았다. 기자도 이산가족상봉단 취재차 평양을 다녀왔고, 대북 사업을 하는 많은 기업인들도 만났다. 평양에서 혈육을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때도 고령이었으니 지금은 아마 거의 돌아가셨을 것이다. 죽기 전에 한 번만 보고 싶다던 소원은 이뤄졌지만 그날 이후 더 사무치는 그리움에 차마 눈을 감지 못하셨으리라. 그때 만났던 대북 사업가들도 20년 세월 속에 대부분 잊혔다. 당시 30대 후반이던 태창의 이주영 사장도 그런 사업가였다. 메리야스를 만들던 태창은 대우에 이어 두 번째로 남북 승인을 받아 북한에서 사업을 한 남한 기업이다. 이 사장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회사를 반석에 올려놓은 유망한 사업가였다. 그가 북한에서 한 사업은 속옷이 아니라 놀랍게도 금강산 샘물이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북한 장전항에서 버스를 타고 온정리를 지나다 샘물 공장을 목격하고는 어떻게 이런 곳에 남한 공장이 있는지 굉장히 놀라워했다. 그 공장이 바로 이 사장이 12년 넘는 인고의 세월 끝에 세운 것이다. 그를 만난 건 2000년 어느 봄이었다. 태창은 이미 대북 사업에 올인하다 1998년 5월 외환위기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금강산 샘물 사업을 하고 있었다. "민족의 영산 금강산 샘물 사업은 누군가 해야 합니다. 대북 사업에서 돈만 벌려다간 안됩니다. 민족 공동 이익이 우선이지요." 지금 생각해도 왠지 가슴이 짠하다. 그는 중국과 수교도 되지 않았던 1987년 연변(옌볜)과 만주를 여행하며 `한국말`을 쓰는 조선족과 한글 간판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족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결심에 뛰어든 사업이 금강산 샘물 개발이다. 회사가 쓰러지는 아픔 끝에 2000년 3월 샘물 공장 준공식이 거행됐다. 남한 자재와 기술로 북한에 지은 첫 번째 공장이다. 그러나 샘물 값보다 운송비가 갑절은 더 비싼 시절이었다. 그마저도 2010년 5·4 조치로 반입이 금지되면서 금강산 샘물은 기억 속에 잊혔다. 그때 패기만만했던 이 사장과 온정리 샘물 공장도 함께.

스스로 이상주의자라 말하던 이 사장은 돈보다 동포애를 우선하며 대북 사업을 했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한계 사업을 북한의 값싼 노동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세대와 목적이 다르니 남북 경협 1세대와 2세대로 구분 지을 만하다. 이제 남북 경협은 삼세판에 접어들었다. 승패가 결정되는 마지막 판이다. 앞선 세대처럼 민족적 감정이 앞서도 안되고, 정치적 리스크를 얕봐도 안된다. 더욱이 이번엔 전혀 다른 판이다. 힌트는 두 개 장면에 담겨 있다. 첫째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다. USB에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담겼다. 두 번째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 민간 투자가 허용될 것"이라고 말한 장면이다. 유추하면 이제 경협은 남북 양자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다자가 참여하게 된다.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도 연계될 것이다. 1·2세대 실패에 비춰 접근도 달리해야 한다. 남한의 자본과 북한의 노동력 결합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은 `단번 도약`을 주창한 지 오래됐다. 대동강 쑥섬을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북한이다. 북한의 해킹 기술은 세계 수준이며 애니메이션, 콘텐츠 제작 기술도 뛰어나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훌륭한 4차 산업혁명의 테스트베드다. 평양 외에 변변한 도시도 없어 `이데아시티`를 실험할 최적지다. 남북 경협 셋째 판은 금강산 샘물 정도로는 안된다. 다행히도 한국인은 삼세판에 강하다.

[전병득 중소기업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경데스크 전병득 더보기

오피니언 목록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