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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왜 정의는 번번이 실패하는가

  • 노원명
  • 입력 : 2017.05.31 17:25:08   수정 :2017.05.31 19: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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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국의 민주주의가 요즘처럼 한심해 보였던 적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은 대선 기간 `러시아 내통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받고 있다. 애당초 사위를 백악관에 들인 사실 자체가 우리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된다. 딸 이방카도 보좌관 직함을 달고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 역사가 고작 70년에 불과하지만 이런 정실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 대통령의 아들과 형제가 비리에 연루돼 감옥에 간 일은 있어도 그들을 대놓고 국정 전면에 서게 할 만큼 간 큰 정권은 없었다. 심지어 왕조시대에도 왕의 피붙이는 국정으로부터 배제됐다. 문재인 대통령 의중을 가장 잘 안다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문 대통령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단지 측근정치 논란을 피하기 위해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트럼프적 기준이라면 이해 못할 `결벽증`이다.

지금 트럼프는 탄핵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 혐의라는 것이 실로 엄청나다. 대선 승리를 위해 러시아와 내통한 혐의, 이 혐의를 수사하는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에게 수사 중단 압력을 넣고 급기야 그를 경질한 혐의 등이다. 국기문란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그에 견주면 40년 지기 최순실에게 연설문 교정을 맡기고 기업들에 K스포츠·미르재단 출연을 강요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박근혜는 3개월 만에 탄핵됐지만 트럼프는 설혹 특검 수사 후에 탄핵 절차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미국 헌법이 규정하는 유죄 입증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감안할 때 부지하세월이다. 정작 미국 현지에선 탄핵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고 한다.

만약 민주주의 수준이 민의의 반영 속도와 대중적 정의감이라는 잣대에 의해 결정된다고 치면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냐는 반론에 즉각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본질적 정의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를 추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게 정의냐`를 묻지 않고 `적법한가`를 따져 묻는다. 정의는 누군가에 의해 독점·오용될 가능성이 있고 그때그때 변하지만 절차는 그렇지 않다. 궁극적으론 절차가 정의가 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신념이다.

트럼프가 직면한 `러시아 내통 의혹` 전개는 미국 공무원들이 절차적 민주주의에 어떻게 복무하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코미 전 국장은 트럼프가 전화로 "내가 수사 대상이냐"고 묻자 "수사 세부사항을 알고 싶다면 백악관 법률고문을 통해 법무부에 문의하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와 독대에서 관련 수사를 중단하라는 요청을 받고 백악관을 나오자마자 이를 메모로 작성해 보좌진과 공유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국가정보국(DNI), 국가안보국(NSA) 국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나와 러시아 사이에 연계가 없다는 것을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거절했고 한 명은 통화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념이 이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한심해 보이지만 그래도 미국이 굴러가는 이유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초 보여주는 활력은 인상적이다. 그런데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대목이 있다. 첫째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배경으로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를 언급한 것이다. 추가 혐의가 나오기도 전에 청와대가 지시한다면 이는 `하명수사`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둘째, 4대강 사업 네 번째 감사를 지시한 것이다. 청와대는 독립기관인 감사원에 감사를 지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나라 공무원 중에 `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미국과 우리의 차이다. 돌이켜 보면 어느 정부나 정의를 말했다. 이 정의는 정권이 바뀌고 나면 불의로 전락하기 일쑤다.
절차를 무시한 정의는 똑같이 절차에 둔감한 새로운 정의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 그 악순환 고리가 한국 헌정 비극을 불러왔다. 문재인정부는 그 교훈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궁극의 정의는 정의감이 아니라 절차에 의해 완성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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