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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노원명

[매경포럼] 오만 떨지마라 제발 떨지마라

  • 노원명 
  • 입력 : 2017.05.03 17:49:45   수정 :2017.05.03 2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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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은 국가적 `무두절(無頭節)`로 대통령은 없고 공무원은 안 움직이는데도 나라는 돌아갔다. 사실 꽤 잘 돌아갔다. 1분기에 경제는 0.9% `어닝 서프라이즈` 성장을 했다. 코스피는 역사적 고점(2228.96)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북핵에 사드 정도를 빼고는 크게 문제 되는 일도 없다. 그게 워낙 큰 문제라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런데 대통령이 있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2004년 탄핵소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한 정지됐던 63일도 무척 평온했다. `대통령 무용론`이 나올까 노 전 대통령이 긴장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두 번이나 무사히 대통령 궐위 기간을 보내고 나니 이런 발칙한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꼭 있어야 하는 거야?`

내 주변에는 긴 무두절을 보낸 공무원도 아니면서 새 대통령 취임이 심란하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 심란함의 기저에는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있다. 새 정권의 등장은 온갖 야단법석을 동반한다. 거창하지만 어딘가 겉도는 시대정신, 누가누가 실세라는 소문, 그들이 자천타천으로 흘리는 하마평, 몇몇 무자격 후보자들의 낙마, 공직사회의 인사 태풍, 어느 지역과 어느 대학 출신이 잘나간다는 입방아, 그리고 이를 포착해내는 입에 착착 감기지만 품격은 없는 언론 신조어…. 이윽고 허니문이 끝나고 "이 정도 실력이었어?" 하는 냉소와 더불어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슬며시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이 시작된다. 과거 어느 정권도 예외가 없었던 출범 초 풍경이다.

5공화국 이후 7명의 대통령 중 3명은 본인이, 3명은 혈육이 구속되고 나머지 1명은 자살한 우리 대통령제의 비극은 어쩌면 이 출범 초 풍경에서 잉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세등등한 신정권의 자만은 무리수를 낳고, 무리수는 원망을 낳고, 원망은 고름처럼 잠복해 있다 정권 4년차 즈음에 이곳저곳에서 분출한다. 그 패턴이 5년 주기로 되풀이돼 왔다.

며칠 후 출범할 신정부는 다를까. 다르기 어려울 것이다. 권력의 성격과 제도가 바뀌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달라지나. 직전 정권에 대한 학습효과는 있지 않겠냐고? 그런 반면교사가 7명이 될 때까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래서 이건 하나 마나한 얘기가 될 것 같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누가 될지 모를 다음 정권에 두 가지만 주문한다. 첫째, 오만 떨지 마라. 제발 떨지 마라. 점령군 행세는 길어야 1년이다. 우리 국민은 곡절 많은 현대사를 겪은 탓으로 `완장`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 겸양은 대통령 혼자서 칼국수 먹고 돈 안 받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대통령 주변에 완장들이 설치면 그걸로 끝이다. 위세 떨기 좋아하는 자, 억하심정 가진 자, 무능한 자는 쓰지 마라. 그러려면 선거 하느라 측근들에 진 빚, 몰려온 폴리페서들에게 한 약속에 뻔뻔해져야 한다. "고맙다. 그런데 자리 약속은 못 지키겠다"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라. 그리고 검찰이라는 칼은 웬만하면 쓰지 마라. 언젠가는 그 칼에 베이게 되어 있다.

둘째, 정책은 자기가 속한 이념 지형의 반대 방향으로 한 클릭만 가라.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최대 치적은 미·중 수교다. 닉슨이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 소속이었다면 보수진영 견제 때문에 중국에 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조금만 유연해지면 원망은 줄고 할 수 있는 일은 늘어난다.
문재인이 김정은 독재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한다고 해서 욕할 지지자들이 얼마나 되겠나. 홍준표가 문재인의 공공일자리 공약 중 일부 합리적인 대목을 차용한다 한들 보수층이 `배신`이라 하겠나. 피 터지게 안 싸우고도 좌파 안보 대통령, 우파 복지 대통령 칭송을 들을 수 있다.

이 나라에선 전직 대통령들이 그렇게 바닥을 깔아주는데도 새 정권이 출범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구관이 명관`이란 소리가 반드시 나왔다. 새 정권은 명관까지는 못 돼도 구관보다는 낫다는 소리를 듣기 바란다. 적어도 `대통령 궐위 기간이 차라리 나았다`는 소리만은 듣지 말았으면 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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