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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노원명

[매경포럼] 反中집회 한번 안 하는 나라

  • 노원명 
  • 입력 : 2017.04.05 17:19:46   수정 :2017.04.05 19:5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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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드 보복은 집요하고 노골적이다. 유통업에서 시작된 한국 제품 불매운동은 제조업으로 확산돼 3월 현대차 판매 실적이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이렇게 맨 근육을 드러낸 국가는 없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드 포기해라. 안 그러면 계속 팬다.` 중국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놀라운 것은 그 성난 국민감정에 불 지르는 대선후보가 한 명도 없다는 거다. 선거는 감성 주도권 경쟁이다. 모든 후보들은 유권자의 감정선을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그해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미선 문제를 쟁점화해 `미국에 할 말은 하는 세력`과 `굴종하는 세력`으로 프레임을 짰다. 반미 감정이 들불처럼 일었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마저 여론에 떠밀려 추도 미사에 나갔다. 물론 본전도 못 건졌다. 노무현이 이회창을 이긴 다섯 가지 승인을 꼽으라면 효순·미선 사건을 빼놓기 어렵다.

지금 정치권은 화약고 같은 반중 감정을 못 본 척하고 있다. 사드 문제로 어느 진보 단체가 `반중 촛불시위`를 연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우파도 마찬가지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1인 시위를 몇 번 했을 뿐이다. 무슨 까닭인가. 2017년의 대선후보들이 2002년보다 더 이성적이고 덜 포퓰리즘적이어서? 우발적 사고였던 효순·미선의 죽음보다 사드 보복이 덜 중요해서?

유럽이나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우파의 전유물이다. 한국은 거꾸로 좌파가 민족 이슈를 주도한다. 그런데 한국 좌파에 반미, 반일은 있어도 반중은 없다. 이렇게 된 데는 1980년대 운동권 주류였던 민족해방론(NL)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NL은 미국을 제국주의로 적대시하고 중국식 사회주의를 자기편으로 간주했다. 정치세력으로서 NL은 소멸했지만 그 정서는 남아 있다. 한국의 좌파는 생래적으로 중국을 비판하는 데 거부감이 있다. 우파는? 기회주의적 한국 우파는 민족주의 같은 문제로 투쟁할 만큼 이념적인 집단이 못 된다.

미국 의회가 사드 보복에 대한 규탄성명을 채택하는데 정작 이 나라 국회는 꿀 먹은 벙어리다. 지난 1월 몇몇 야당 의원들이 "중국에 놀아난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기어코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장과 사진 한 장을 찍고 왔다. 사진 속 그들은 고위직 환대에 감읍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실실 웃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조선 시대 우리와 중국의 관계가 대체로 지금과 같았다. 누구는 중국을 숭상해서, 누구는 중국이 두려워서 설설 기었다. 우리가 그 굴종에서 벗어난 것은 최근 100년 남짓한 기간이다. 중국이라는 존재를 잊고 지낸, 수천 년 민족사에서 예외적인 시기였다. 이제 중국은 다시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부활해 우리에게 예전처럼 엎드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과는 다르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에 60만 대군을 보유한 나라다. 한미동맹도 있다. 중국이 `꿇어라` 하면 꿇을 만큼 그렇게 약체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겐 중국을 향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나 태도가 결여돼 있다. 덩치는 커졌는데 배짱은 100년 전 그대로다. 한마디 대거리도 못하는 이 나라 정치권을 보고 중국은 속으로 "너희들이 늘 그렇지" 하며 웃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신라가 당과 힘을 합쳐 백제를 쳐부수자 당은 돌변해 백제는 물론 신라까지 먹으려 들었다. 신라 문무왕 김법민이 결단에 앞서 외삼촌 김유신에게 묻는다. "당나라가 우리 적을 없애 주었는데 지금 맞붙어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소?" 김유신은 대답한다.
"개는 주인을 무서워하지만 주인이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당(對唐) 결전이 삼국통일로 이어졌고 오늘의 한민족이 만들어졌다. 다리를 밟히면 물어야 정상이다. 다시 중국의 개로 살기 싫다면 우리는 결단코 저들을 향해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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