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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데스크 김주영

[매경데스크] 한국의 호쿠사이를 기다리며

  • 김주영
  • 입력 : 2017.01.12 17:05:10   수정 :2017.01.12 17: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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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연히 들른 한 이자카야에서 벽에 걸린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에도시대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가 그린 `가나가와의 큰 파도`라는 목판화 작품이었다. 제목처럼 큰 파도가 치는 그림인데, 목판화의 특성상 검은 윤곽선에 몇 가지 색만 사용해 간결하고 단출한 풍경이지만 푸른빛의 파도는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호쿠사이는 일본 후지산 풍경을 계절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묘사한 채색 목판화 시리즈 `후지산 36경`을 남겼다.
`가나가와의 큰 파도`는 이 시리즈 중 하나다. 60대 중반에 작품을 시작해 거의 10년에 걸쳐 완성한 이 시리즈는 19세기 후반 서구 세계에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로 각인됐고 당대의 마네와 모네를 비롯해 반고흐, 고갱 등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까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나가와의 큰 파도`가 유럽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867년 열린 만국박람회였다. 호쿠사이를 필두로 한 일본 화가들이 박람회에서 전시한 100여 점의 작품은 이후 유럽에서 일본풍 사조, 이른바 `자포니슴(Japonisme·일본주의)`을 불러일으켰다. 기모노를 입고 사진을 찍고, 일본 도자기를 감상하며 일본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파리 사교계의 유행이 됐다. 일례로 일본풍에 푹 빠진 인상파 화가 모네는 자신의 집에 일본풍 연못정원을 만들고 실내는 일본 목판화와 가구로 치장했다. 심지어 아내에게 기모노를 입히고 일본 부채를 들려 인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반고흐는 아예 일본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의 목판화를 그대로 베껴 유화로 그려내기도 했다. 히로시게에 대한 오마주였다.

미술뿐이 아니다. `가나가와의 큰 파도`에서 영감을 받아 릴케는 시 `산`을 썼고, 드뷔시는 교향곡 `바다`의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일본은 인상파 화가들은 물론이고 유럽 식자층이 가장 동경하는 나라가 됐다. 아흔 살에 세상을 떠난 호쿠사이는 자신의 목판화가 이처럼 19세기 유럽 미술을 완전히 바꿔 놓고 일본 문화의 상징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백 년을 훌쩍 지나 한국의 한 이자카야에까지 자신의 작품이 걸려 있을 만큼 유명세를 탈지는 더더욱 꿈도 못 꿨을 게다.

한류가 아시아는 물론 유럽, 중남미까지 번져 가고 있는 지금, 호쿠사이와 19세기 초중반에 시작된 자포니슴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문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새삼 실감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류에 시사점도 있다. 본격적인 한류의 역사는 불과 십수 년밖에 안 되지만 한류는 이제 깊이와 외연을 더욱 확장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대중문화로 기반을 다졌다면 앞으로 전통예술문화로 범주를 넓혀 호쿠사이처럼 현지 전문가, 식자층에까지 파고들어야 한다.

연초부터 중국이 한국 화장품에 무더기 수입 불허 방침을 밝히고 지난해 말에는 한류 콘텐츠에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까지 내렸다. 악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술한류`의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팔순, 구순의 한국 현대미술 1세대 거장들이 요즘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뉴욕, 런던 등 전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잇달아 전시회가 열리는가 하면, 세계 경매시장에서도 한국 단색화에 눈독을 들이는 벽안의 컬렉터들이 늘고 있다.
심지어 "단군 이래 서구에서 한국 미술을 처음으로 제대로 대접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한국 단색화 열풍을 보면서 19세기 일본 목판화 열풍을 떠올렸다면 심한 비약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 순수예술 분야에서 조성진, 한강, 김기민 등 신한류 바람이 불면서 `K드라마` `K팝`에 이은 `K컬처`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정유년 새해 갖가지 악재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우리에겐 꿈꾸고 가꿔 나가야 할 희망도 있다. 언젠가 프랑스 유명 화가가 한국 화가 작품을 모방하고 김홍도, 신윤복 그림이 유럽 미술관, 거리 카페에 걸려 있을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

[김주영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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