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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데스크 김주영

[매경데스크] 한국의 메디치家가 나오려면

  • 김주영 
  • 입력 : 2017.04.06 17:17:56   수정 :2017.04.06 17: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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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家) 안주인인 홍라희 전 관장이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해오던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관장직을 전격적으로 내려놓은 지 한 달이 지났다. 그간 미술계에서는 갖가지 뒷얘기들이 꼬리를 물었다.

홍 전 관장의 사퇴 배경을 두고 추측이 난무하는가 하면, 삼성가가 미술사업에서 아예 손을 뗄 수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당장 이달 열릴 예정이었던 김환기전(展)과 9월 서예전도 전격 취소됐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리움미술관 기획전 몇 개 취소한다고 그게 뭐 대수냐" "사립미술관 관장 사임으로 미술계가 비상이라는 것은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든 민간이든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척박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홍 전 관장의 사임은 단순히 한 사립미술관 관장의 사임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 삼성은 문화재단을 통해 가장 많은 돈을 문화예술에 지원해 왔다. 리움미술관은 연간 100억원대 작품을 구매하고 소장품도 2007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보·보물 150여 점을 포함해 1만5000점에 달한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이 소장한 7460점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이 같은 컬렉션 덕분에 리움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사립미술관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 모리미술관이 있고, 미국에 게티센터가 있듯이 한국에는 리움이 있다`고 회자되는 이유다. 한 미술계 원로는 "해외 컬렉터나 비즈니스 VIP들이 오면 변변하게 보여줄 만한 곳이 없었는데, 리움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미술관 하나쯤 있다는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나 홍 전 관장은 미술계에 드러나지 않게 후원자 역할을 해왔다. 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상징인 백남준의 1988년작 `다다익선`이 TV가 작동이 안 돼 완전히 망가졌을 때 TV 1000대와 리노베이션 비용을 지원한 것이 홍 전 관장이다. 그는 한국 대표 작가들이 외국에서 전시를 할 때도 조용히 도움을 줬다. 백남준 구겐하임미술관 개인전(2000년), 이우환 구겐하임미술관 개인전(2011년)도 삼성 후원 없이는 불가능한 전시였다. 또 신진 작가 등용문인 `아트스펙트럼` 전시회도 꾸준히 열어왔다.

이렇게 삼성만큼 미술계에 지원한 기업이 없지만, 삼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오히려 배척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2013년) 당시 일화가 단적인 예다. 명색이 국립미술관을 개관하면서 내세울 만한 소장품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던 홍 전 관장은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한 수백 억원대 작품들을 무료로 빌려주고 설치까지 해주겠다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퇴짜 이유는 국립미술관이 삼성의 지원을 받으면 구설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의의 제안을 거절당한 홍 전 관장은 큰 상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삼성의 미술계 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홍 전 관장의 사퇴 후 미술계를 바라보는 전망에도 깔려 있다. 홍 전 관장이 미술계를 주도해 오면서 만들어진 헤게모니가 홍 전 관장의 사퇴로 깨지게 되니 오히려 미술계의 다양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하지만 재벌기업이라는 편견 때문에 홍 전 관장과 삼성이 그동안 한국 미술계, 문화예술계에 기여한 것이 폄하돼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삼성은 10억원 이상 지출하는 사회공헌사업은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을 바꿨다. 홍 전 관장 사퇴에 이어 그룹 차원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이 얼어붙지 않을까 우려된다.
"리움이 있어 한국 미술계가 이처럼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미술계 보편적 평가에 걸맞게 다시 삼성이 미술계의 든든한 후원자로 돌아오길 바란다.

정부도 이번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기업에 대한 반 강제적 모금이나 기부를 근절하고 기업의 자발적인 문화예술 지원을 독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이율배반적 시선도 거둬야 한다. 한국의 메디치가(家)는 그런 풍토 속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김주영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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