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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데스크 김주영

[매경데스크] 문화는 죄가 없다

  • 김주영 
  • 입력 : 2016.12.01 17:47:03   수정 :2016.12.01 19: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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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불황에 기업들이 이공계 채용을 늘리면서 인문계 졸업자들의 취업이 어려워진 세태를 반영한 말인데, 요즘 이 말이 다시 유행이란다.

그런데 그 의미는 달라졌다. `문과`여서가 아니라, `문체부여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로 바뀌었다.
세종시 관가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이 신조어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원지로 만신창이가 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의 자괴감, 부채의식과 함께 땅에 떨어진 사기를 대변한다. 최근 문체부 1급 공무원인 문화콘텐츠산업실장과 종무실장이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문체부는 문화창조융합벨트사업을 지원하는 문화콘텐츠산업실,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 관련 부서, 김종 2차관이 담당한 체육정책실 등 사실상 최순실 국정농단의 `현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문체부는 연일 의혹에 대한 해명 보도자료를 내는 것이 주요 일과가 된 지 오래다.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문화융성`을 국정 4대 기조로 잡았던 박근혜정부가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융성은커녕 문화를 되레 만신창이로 만들어놨다. 문체부는 정권이 바뀌면 그에 맞는 코드 인사로 전문성 없이 아무나 꽂으면 되는 부서로 전락했고 그 와중에 60여 년 전 광기 어린 매카시즘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까지 나돌고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대착오적인 것은 정부가 문화를 주도하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발상에 있다. 한국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고 한국 드라마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전역에서 방송되고, 싸이 노래가 빌보드차트에 오른 것이 정부가 노력해서 된 일인가.

정부가 문화정책이랍시고 어설프게 앞장서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십수 년 전 김대중정부의 문화정책이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대중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문화 지원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문화인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북돋웠다. 이 정책은 영국의 예술행정가 존 피크(John Pick)가 `예술행정론`에서 역설한 `팔길이의 원칙(Arm`s Length principle)`에서 기원한다.

`지원은 하되 (팔 길이만큼 거리 두고)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은 1945년 영국이 예술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예술평의회를 창설할 때 정치권력과 관료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채택한 정책이다. 이 덕분에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정권의 뒤바뀜과 관계없이 예술평의회는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맡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었다.

최순실-차은택의 국정농단은 정치권력·관료와 예술이 뒤섞여 결국 지원하는 사람과 지원받는 사람이 한통속이었던 데 있다. 팔길이 원칙이 아니라 사실상 `손뼘길이 원칙(Palm`s Length principle)`이었던 것이다.

최-차 국정농단의 후폭풍으로 현장에서는 이미 아우성 소리가 넘쳐난다.

문체부 산하 조직 관계자는 "운영비 명목 예산이 30% 삭감돼 직원들 급여를 깎아야 할 판"이라며 "잘못은 비선실세가 저질러놓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산하 조직 말단 직원들이 떠안게 됐다"며 하소연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문화창조벤처센터에 입주한 업체들이나 문화창조아카데미를 다니는 학생들은 또 무슨 죄인가.

이번 사태로 `문화융성`이나 `융합콘텐츠`, 창조경제센터의 `창조`자만 들어가도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낙인찍어 백안시하는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지만,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미명 아래 묻지마식으로 칼날을 휘둘러선 안 된다. 그것은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 또 다른 폭력이다.

이참에 문체부도 거듭나야 한다.
문화융성을 위한 문화정책도 새롭게 정립돼야 함은 물론이다. 문체부가 개입해서 정책적으로 지원할 분야는 이미 산업화의 영역으로 들어서 자립적으로 경제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산업 분야가 아니다. 이 분야는 철저히 시장논리로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기업들이 성장하고 해외로 뻗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없애는 데 집중하면 된다. 정작 정부가 개입해야 할 분야는 문화·예술적 다양성을 위해 발전시켜야 할 순수예술, 전통문화 등에 대한 지원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김주영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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