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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김정욱

[매경포럼] 10년 뒤를 알려면 에스토니아에 가라

  • 김정욱
  • 입력 : 2018.01.24 17:40:50   수정 :2018.01.24 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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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입구에 상징적인 건물이 있다. 파레하우스(Fahle House)란 이름의 이 건물은 아래쪽 5개 층은 오래된 석회석으로, 상단부 6개 층은 첨단 유리벽으로 돼 있다. 1924년 건축된 제지공장 보일러 건물 위에 2007년 유리벽 외관의 첨단 아파트를 올린 것이다. 바로 옆에는 50m 높이의 수백 년 된 공장 굴뚝이 서 있다.
언뜻 보면 부조화(不調和)다. 이곳 사람들은 건물 하단부는 억눌렸던 구소련 체제를, 상단부는 디지털 강국으로 뻗어나가는 에스토니아의 현재 모습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 건물에는 전 세계 국가 중 에스토니아가 처음 도입한 `전자영주권(e-Residency)`을 기획·관리하는 기관이 있다. 이 기관 입구에는 `디지털 에스토니아로의 입장(enter e-Estonia)`이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전자영주권은 디지털 국경을 없애는 획기적인 정책이다. 외국인과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외국인들은 100유로만 내면 온라인상의 간단한 절차를 거쳐 서류상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2014년 12월 시행된 뒤 2만8000명이 받았고 매년 1000~2000개 법인이 새로 설립된다. 이들 기업이 내는 연간 법인 유지비용 500만~600만유로는 국가 재정에 큰 보탬이 된다.

에스토니아가 1991년 옛 소련의 통치를 벗어났을 때 산업 기반은 취약했다. 러시아가 떠나면서 잠수함 조립과 섬유 등 일부 산업마저 가동이 중단됐다. 전화기 보유 가정이 절반이 안 됐고, 전화기를 받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핀란드 스웨덴 등에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했다. 국가 행정체계를 전산화하는 데도 주력했다. 전산화의 계기는 정부 기록서류들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구소련 통치가 51년간 진행되면서 과거 에스토니아 국적 보유자와 부동산 소유권 문건들이 많이 사라졌다. `데이터 보관`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아예 종이보다는 디지털화로 과감히 방향을 틀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을 기본 권리로 규정하고 규제를 대거 없앴다. 모든 행정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X로드(X-Road)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부족한 인프라를 보완하고 행정처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최근 현지에서 만난 케르스티 칼률라이드 대통령은 "취임 후 외교관 신임장과 연말 연하장을 제외하곤 종이문건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국가 디지털화로 인해 공무원 부패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대면 접촉 필요성이 줄어들고 행정절차가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의 반부패지수(2016년 기준)는 180여 개국 중 22위다. 프랑스(23위) 한국(52위)보다 높다.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했던 나라들이 공무원 부패에 시달린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안다.

핀란드와는 개인 의료정보도 공유한다. 환자가 동의하면 상대방 국가의 의료진이 개인정보를 볼 수 있다. 러시아로부터 사이버 공격을 당한 뒤 최근 국가정보 데이터센터를 룩셈부르크에 설치했다. 이른바 `데이터 대사관(Data Embassy)`이다. 개방과 규제 혁파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부럽다.

에스토니아가 겪은 고난의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강대국에 수백 년간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이를 농노와 노예의 역사라고 간주한다. 그럼에도 저항정신은 강하다. 1989년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로 이어진 620㎞를 220만명이 팔짱을 끼고 노래를 부른 `노래혁명(Singing Revolution)`이 대표적이다.

이런 에스토니아가 디지털 혁명의 산실이 되고 있다.
디지털 대사관, 전자영주권, 블록체인 행정 등이 모두 세계 최초다. 이를 통해 이제 스타트업의 성지를 꿈꾸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서 바라본 동쪽 끝 우리나라. 공무원 증원과 거미줄 규제를 강화하면서 반기업정서를 고조시키는 게 굉장히 생뚱맞아 보였다. 이런 `거꾸로 질주`가 계속되면 우리가 쌓아온 경제강국 명성이 무너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김정욱 국차장 겸 지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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