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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김정욱

[매경포럼] 사우디 국왕이 코리아 패싱한 이유

  • 김정욱 
  • 입력 : 2017.09.27 17:12:44   수정 :2017.09.27 18: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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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22조원 원전설명회에 주무부처에서 서기관급이 참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떠오른 일이 있다. 지난 3월 대통령 탄핵 국면에 묻혔던 사우디 국왕의 아시아 순방 얘기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지난 3월 아시아 6개국을 방문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를 거쳐 일본 중국 몰디브까지 들렀다.
국왕의 행차는 화려했다. 왕자 20여 명, 장관 10여명 등 1600명이 첨단 보잉기 6대에 나눠 타고 다녔다. 순방 목적은 경제 외교. 석유에 의존하던 사우디 경제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방문국마다 투자를 협의하고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말레이시아에선 8조원짜리 석유화학단지 건설을, 중국에선 시진핑 주석을 만나 73조원 규모의 35개 경협 프로젝트에 서명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사우디 참여를 요청했고 군사협력도 상의했다. 콧대 높은 중국이지만 외교 사령탑인 양제츠 국무위원이 공항에 나가는 예우를 갖췄다.

그러나 한국은 빠졌다. 사우디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국이자 우방국이다. 양국이 상대 국가에 차지하는 수출입 규모는 4~5위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우디 원유 수입액은 연간 20조~40조원으로 가장 많다.

사우디 국왕의 코리아 패싱(passing)의 주된 요인은 대통령 탄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국가 간 인맥과 정책 단절`도 무시할 수 없다.

사우디는 한동안 우리나라를 우대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우디 국왕이 직접 주최한 축제에 참석한 적이 있다. 사우디 최대 축제인 이 행사에는 매년 외국 정상 한 명을 초청한다. 축제 기간 중 사우디 원전 건설과 신도시 개발 계획도 논의했다. 축제가 있기 10개월 전 알리 누아이미 사우디 석유장관 등 실력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유럽과는 케미(케미스트리)가 맞지 않으므로 한국과의 교역·투자를 확대하고 싶다`는 의중을 비쳤고, 정부도 적극 호응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뒤 양국 관계는 냉각됐다. 전임 정권이 추진한 사업을 뒤집거나 무시하는 `정권 단절 현상`이 재현됐기 때문이다. 사우디에선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이럴 수 있느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 원전을 수주하겠다는 발상은 너무 순진하다. 더구나 최근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사우디 원전 프로젝트 설명회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서기관급을 회의 파트너로 보냈다. 한마디로 코미디다.

정부는 "탈원전과 원전 수출은 별개이며, 원전 수출은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최근 방한한 윌리엄 맥우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원자력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의 발언. "원전을 지으려는 국가들이 중국·러시아 등 대안이 많은데 굳이 원전을 포기하겠다는 한국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1기 준공을 앞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이 사업은 설계 시공에 이어 60년간 운영과 유지·보수까지 따냈다. 원전 1~4기의 건설 규모는 21조원, 운영 유지·보수 규모는 50조원에 달한다. 계약 조건에는 한국에서 동일 기종을 운영하면서 전문인력을 보내도록 돼 있다.

UAE 원전은 이 전 대통령이 6차례 UAE 왕세자에게 전화할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6년 루마니아를 찾아 3조원짜리 원전 수주를 추진하기도 했다.

원전만이 아니다. 17조원 미국 공군 고등훈련기 수주는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사업 주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석 달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연말 입찰을 앞두고 국가 차원에서 `공중전`을 벌여야 할 시기에 이렇다. 방위산업 비리를 없애는 건 좋다. 하지만 수술대 환자는 환부만, 그것도 신속히 도려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가 간 약속은 지켜야 한다. 5년 단임으로 고위급 채널이 너무 자주 바뀐다. 경제 분야만이라도 경제 단체와 정부가 반관·반민 형태의 해외개발투자공사를 만들어야 한다."(최중경 전 장관 저서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전임 정권이 아무리 밉더라도 좋은 정책과 인맥은 잘 관리해야 한다. 그게 선진국이고 예측 가능한 나라가 아닌가.

[김정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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