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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김정욱

[매경포럼] 관악서 김순경 사건과 이재용 재판

  • 김정욱
  • 입력 : 2017.08.30 17:26:36   수정 :2017.08.30 20: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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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뇌물죄 재판에서 논란이 된 `묵시적 청탁`과 관련해 법조계에서 한동안 화제가 됐던 사건이 있다. 1992년 발생한 `관악경찰서 김 순경 사건`. 형사재판에서 증거주의와 무죄추정 원칙에 충실하지 않았을 때 의외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화제가 된 전북 삼례읍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사건처럼 진범이 뒤바뀐 것이다.

개요는 이렇다.
1992년 11월 서울 신림동 한 여관에서 김 순경 애인인 한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1년 반 사귀어 결혼까지 생각했으나 카페 종업원 출신이란 이유로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사건 당일 새벽 2~3시 함께 여관에 들어갔다가 말다툼을 한 뒤 7시께 근무를 위해 여관을 나섰다. 이후 싸운 게 미안해 오전 10시 다시 여관을 찾았고 이때 이 여성은 숨져 있었다. 곧바로 신고했다. 조사 결과 사인은 경부 압박, 사망 시간은 새벽 3~5시로 추정됐다. 이 시간에 김 순경이 피해자와 함께 있었다는 진술을 받았다. 여관 주인은 다른 사람은 출입이 없었다고 했다. 동료 경찰들은 사망 추정 시간 등을 제시하며 김 순경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조사 초기 범행을 극구 부인하던 김 순경은 `당신이 봐도 누가 범인이겠냐, 자수하면 살인이 아닌 폭행치사죄를 적용해 집행유예로 풀어주겠다` 등 동료 경찰의 회유에 넘어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허위 자백했다. 김 순경은 이후 재판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했지만 다음해 5월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고, 그해 9월 항소심도 `이유 없다`며 기각됐다.

반전은 그해 12월 일어났다. 강도 혐의로 체포된 19세 한 남성이 신림동 여관 사건을 여죄로 털어놨다. 사건 당일 오전 7시 여관 주변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여관 뒷문을 통해 들어간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김 순경은 1년여 만에 풀려났다.

이 사건에서 사망 추정 시간과 김 순경의 알리바이 외에는 뚜렷한 물증이 없었고 김 순경이 부인했는데도 1, 2심 재판부는 정황과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사건 추적-살인 누명 쓴 경찰관의 억울한 옥살이`란 글에서 이 사건을 소개하며 사망 추정 시간의 수많은 오차를 지적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형사재판의 대원칙, 즉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명백한 증거가 있느냐, 무죄추정을 했느냐`가 다시 한번 회자됐다.

삼성 뇌물죄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 등 개별 현안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포괄적 현안으로서 승계작업이 있었고, 승마 지원 등에 대해 대통령에게 묵시적인 청탁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이 없었는데, 어떻게 포괄적인 현안에 대해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는지 논리적으로 쉽게 납득이 안 된다. 특히 특검이 제출한 업무수첩 등 증거의 부족함을 말하는 대목에선 `명백한 증거`를 갖고 판결했는지 의심스럽다. 수개월간 진행된 최순실 사태와 촛불시위, 새 정부 출범 등 주변 여건과 반재벌 정서가 재판부에 나쁜 선입견을 줬을 수 있다.

삼성 사건의 본질은 재판부가 밝힌 대로 대통령이 기업에 자금을 요구했고 기업은 마지못해 이에 응했으며, 이 과정에서 불법 유용이 벌어진 것이다. 과연 청탁을 안 들어줬다고 막강한 권력자의 요구를 거부할 만한 기업이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

얼마 전 한국전력은 11개 자회사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에 800억원을 후원한다고 발표했다. 일부 자회사들은 이사회 의결도 마치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지난해부터 한전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평창 전력 사업에 이미 많은 돈을 투자한 상태여서 추가 지원을 꺼려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의 공공기관 참여 요청이 있은 뒤 입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담당 부처가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한전이란 큰 회사가 정부에 대한 민원이나 현안이 과연 없을까. 삼성과 한전의 지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재판은 법논리나 증거를 따지기보다는 반재벌정서와 정경유착 단절이라는 여론에 기반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을 대표로 희생양을 삼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작 시급한 건 준조세 금지 등 정경유착 고리를 끊는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정경유착의 한 축인 정치권과 정부는 `대기업 배싱(bashing)`만 쏟아낼 뿐 법적 장치에는 관심이 없다.

[김정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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