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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김정욱

[매경포럼] 동네북으로 전락한 한국 기업

  • 김정욱 
  • 입력 : 2017.03.15 17:45:16   수정 :2017.03.15 19: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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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액상차를 수출해온 A중소기업은 최근 물량 전체를 반품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제품 표면에 부착된 라벨 내용이 현지 수입인증서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사드 보복 이후 중국에서 활개 치는 `식파라치(식품 파파라치)`가 신고했고 현지 당국이 반품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라벨을 아무리 살펴봐도 성분 유효기간 등 종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이번 반품으로 벌금까지 포함한 이 기업의 손해 규모는 수천만 원에 달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한 국내 기업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9일 설치한 `대중 무역애로 신고센터`에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의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피해 유형은 행사·계약 연기나 파기, 인허가 지연, 통관 불허, 비자 발급 거부와 함께 수입 금지까지 다양하다.

"2008년 금융위기나 작년 한진해운 법정관리 때도 신고센터를 운영했습니다. 과거에는 하루 이틀 반짝했지만 지금은 일주일간 꾸준히 접수되고 있죠. 기업들이 상당히 다급한 것 같습니다."(안근배 무역협회 무역정책지원본부장)

신고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대기업들은 버티면서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고 한두 번만 거래가 끊겨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롯데 등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에까지 보복 조치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15일에는 단체여행을 전면 중단시켰다. 한류 등 콘텐츠와 소비재 수입품, 유통기업에 이어 이젠 일반 제조업까지 제재할 모양새다.

중국 정부는 민간인까지 동원하며 민관 합동으로 치졸하게 보복하는 반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외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이미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손을 들었다. 그나마 미국에 공장을 짓는 한국타이어 등은 천운이라며 안도한다. 최근 현대중공업의 변압기에 대한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 관세 부과는 업계 관계자들도 납득하지 못한다. 관련 규정이 강화됐다고 해도 예비판정의 20배인 61%의 관세 폭탄을 때리는 것은 흔치 않다. 앞으로도 국내 기업들이 당해야 할 무역 보복 사례는 줄줄이 대기 중이다. G2(미국과 중국)에 우리 기업들은 처절하게 얻어맞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탄핵정국에서 빈사 상태에 빠진 정부는 간담회를 열어 애로사항을 듣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차기 정부 출범 후에도 혼선은 불가피해 보여 강대국의 보복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재계 우려다. 한 대기업 임원은 "탄핵 사태로 우리 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된 게 걱정이지만, 대외적으로 국가지도자가 없다는 게 이처럼 비참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더욱 분통을 터뜨리는 건 국내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다.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대기업 때리기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증폭되고 있다. 대권주자들은 4대 재벌 집중규제, 금산분리 강화 등 재벌개혁 공약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국가의 미래나 성장동력을 걱정하기보다는 막대한 세금이 소요되는 복지와 일자리 등 `솜사탕` 공약에 초점을 맞춘다. 세금을 어떻게 걷겠다는 현실적인 대안도 없으면서 말이다.

재계는 최순실 게이트 이후 5개월째 기진맥진한 상태다. 지난해 10월부터 검찰 수사, 국정조사, 특검에 이어 다시 검찰 수사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총수 소환조사와 청문회 출석, 압수수색이 고장난 턴테이블처럼 반복적으로 진행됐다. 검찰의 2차 수사와 함께 후속 재판까지 감안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한국 기업은 외국에선 오른뺨을, 국내에선 왼쪽 뺨을 맞는 격입니다. 외환위기 때도 지금처럼 답답하진 않았죠."(경제단체 임원)

지금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는 기업인 50여 명이 일한다. 이 가운데 45명이 한진그룹 임직원이다. 조양호 한진 회장이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2014년 파견됐다.
연간 30억원의 급여는 물론 한진그룹 부담이다. 조 회장은 2016년 5월 `정권에 찍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전화 한 통에 전격 해임됐다. 그러나 한진 임직원들은 동계올림픽이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이곳에서 근무해야 한다. 이게 한국 기업들이 처한 현실이다.

[김정욱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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