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매경데스크 김대영

[매경데스크] 블랙 기업

  • 김대영 
  • 입력 : 2017.05.28 17:31:15   수정 :2017.05.28 17:52:49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35629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블랙기업(The black company).` 법에 어긋나는 비합리적인 노동을 직원에게 강요하거나 노동 착취가 이뤄지는 기업을 뜻하는 일본식 영어다. 고도 경제성장기 일본에선 잔업과 초과근무가 많았다. 과로사(過勞死)라는 일본 발음인 `가로시(karoshi)`가 영어사전에 그대로 표기될 정도였다.

2015년 말 발생한 사건으로 일본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
일본 최대 광고 회사 덴쓰의 신입사원인 다카하시 마쓰리가 장시간 초과근무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이 신고한 다카하시 씨의 초과근무 시간은 한 달에 50시간이었다. 일본 노동국은 덴쓰의 도쿄 본사와 주요 지사를 일제히 압수수색했다. 그 결과 실제 초과근무 시간은 105시간이며 상사에 의한 무리한 지시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사실도 드러났다. 일본 시민단체인 블랙기업대상기획위원회는 덴쓰를 2016년 블랙기업 톱10 가운데 1등으로 선정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나서서 "덴쓰 사원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근로자 입장에서 일하는 방식이 확실하게 바뀌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시이 다다시 덴쓰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기자회견에서 "120% 성과를 내기 위해 일을 마다하지 않는 기업 문화에 긍지를 가졌지만 이 모든 것이 의욕 과잉이었고 제동을 걸지 못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기업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미쓰이스미토모화재보험이 지난달부터 평일 오후 7시부터 잔업을 전면 금지했다. 대형 가구 업체인 닛토리는 퇴근부터 출근까지 반드시 최소 10시간 이상 갖도록 한다는 `인터벌 규정`을 도입했다.

한국의 장시간 근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악명이 높다. 모 방송사 신입 PD가 고된 근무 환경 등을 이유로 지난해 10월 말 자살했다. 그가 남긴 휴대폰 메시지 등에는 하루 20시간 이상 일하며 2~3시간 자고 출근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일부 게임 회사는 죽음의 크런치 모드로 유명하다. 크런치 모드란 게임 출시를 앞두고 개발팀이 밤을 새우면서 일한다는 뜻의 은어다. 짧아진 스마트폰 게임의 이용 주기 때문에 게임 출시 후에도 버그 잡기와 패치 작업 등으로 사실상 1년 내내 크런치 모드 상태다. 정보기술(IT) 개발자들은 24시간 불이 켜진 사무실을 빗대어 `구로디지털단지에는 매일 밤 오징어잡이 배가 조업 중`이라고 자조를 섞어 말한다. 아르바이트생과 일부 직원들에 대해 급여를 체불해 물의를 빚은 모 기업은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고용노동부의 근로 감독에서 지적받은 체불 임금 84억원을 모두 지급했지만 이미 조직원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고 기업 브랜드는 추락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애플에 납품하는 업체로 유명한 대만의 폭스콘은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 때문에 `자살공장`으로 불렸다. 2010년 10여 명의 근로자가 집단 자살한 것을 비롯해 최근까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근로자가 나오고 있다.

블랙기업이 왜 나쁜가. 공동체의 `신뢰자산`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성 주체인 기업이라는 조직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특히 젊고 유능한 인재를 망친다. 블랙기업은 자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젊은이의 미래까지 박탈한다. 아울러 대량으로 신입사원을 모집해 버티는 직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일회용품처럼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사회에 전가한다. 우울증 등의 치료를 위한 의료비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과로사에 따른 비용, 이직 비용 등 폐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도 일하는 문화를 되돌아봐야 한다. 물론 한두 기업의 노력이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구태의연한 일하는 문화를 개선하도록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기업 최고경영자들도 일하는 행태를 새롭게 하도록 생각을 바꿔야 한다.
경영자와 관리자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과연 내 아들과 딸에게 현재 내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라고 권유할 것인가?" 만일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 어렵다면 일하는 문화를 고쳐야 한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정부와 민간단체들은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출산율 제고에 앞서 젊은이들의 자살률을 낮추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만 관심을 기울일 게 아니라 양적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한국 고용 시장을 질적으로 끌어올리는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

[김대영 유통경제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경데스크 김대영 더보기

오피니언 목록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