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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장박원

[매경포럼] 근로시간 단축이 모두의 축복 되려면

  • 장박원
  • 입력 : 2017.05.01 17: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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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5월 1일 미국 전역에서는 하루 10시간 노동을 8시간으로 줄이라며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총파업이 벌어졌다. 시위가 격렬했던 곳 중 하나가 시카고였는데 급기야 5월 4일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다. 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나온 것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가 헤이마켓 광장에서 열렸다. 이때 경찰이 운집한 곳에 폭탄이 터지고 경찰도 시위대에 발포하며 또다시 다수의 사망자가 생겼다.
이 사건 이후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노동 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4년 뒤인 1890년 5월 1일 헤이마켓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노동자의 날이 지정됐다. 어제는 세계 노동절 127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노동절을 잉태했던 노동시간 단축이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제외한 유력 후보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주당 68시간에 달하는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고, 단계적으로 연간 1800시간, 즉 주당 40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이 길기로 악명이 높다. 2015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야근과 특근, 주말 근무로 직장인들은 웰빙은커녕 만성 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기 일쑤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일주일 평균 2.3회 야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니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당장 근로시간을 줄였을 때 나타날 혼란이다. 대선 후보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을 늘리고 그만큼 국민소득도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충분한 준비 없이 근로시간을 줄이면 기업은 기업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어려움에 처한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 탓에 사람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건비가 20% 이상 증가하는 것도 부담이다. 그렇지 않아도 박봉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임금이 줄어 생활이 더욱 빠듯해질 것이다. 대기업들이 고용을 늘릴 것이라는 가정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추가 채용보다 기존 직원을 활용해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는 기업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확대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실 여건을 고려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추진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1990년대 일본은 근로시간을 4시간 줄이는 데 8년이 걸렸다. 독일은 5시간 단축하는 데 29년, 프랑스는 4시간 줄이려고 16년간 논의를 거쳤다. 그만큼 근로시간 단축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여야가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하고도 결국 막판에 무산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근로시간 단축은 전체 노동개혁의 틀에서 봐야 한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도 충분히 생산성을 높일 방안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의 합의가 필요하다. 노사 양쪽의 양보도 중요하다. 기업은 인건비 상승 부담을 감수해야 하고 노조는 임금이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해소 등 다른 개혁 과제와의 연관성도 따져봐야 한다. 명분의 함정에 빠져 현실을 등한시한 개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기업 경영과 노동 현장의 엄연한 현실을 바탕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근로시간 단축은 노사, 더 나아가 국민 모두의 축복이 될 수 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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