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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이진우

[매경포럼] 한국경제와 워싱턴DC

  • 이진우
  • 입력 : 2017.09.04 17:35:09   수정 :2017.09.04 19: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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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좀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몇 마디 물어볼 필요가 있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경력을 쌓았는지는 기본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그의 활동 무대다. 본류 지역에서 일하며 그 정서를 꿰뚫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금융은 뉴욕, IT는 실리콘밸리, 특히 정치·외교·안보는 워싱턴DC가 미국의 본류인 것이다. 본류에서 벗어난 얘기는 균형감을 잃기 십상이다.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관련된 뉴욕발 기사에 코웃음을 치는 워싱턴DC 사람을 여럿 만나 봤다. 연준을 움직이는 작동 원리는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결국 정치라는 얘기였다. `주식, 채권이 감히 낄 자리가 아니다`라는 오만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미 연준은 시장의 잔바람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하긴 미 연준 자체가 정치적 타합으로 탄생한 조직이다. 미국 내에선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이 꽤 많다).

워싱턴DC에선 정치·안보·외교가 갑(甲)이다. 경제는 한참 뒤로 밀리기 일쑤다. 워싱턴DC가 경제학자에게 인기가 없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워싱턴DC 주변 대학에 고명한 경제학자가 손에 꼽히는 이유다.

한미관계에도 이 공식은 고스란히 적용된다. 본류는 어디까지나 워싱턴DC다. `주파수`가 어긋나면 한국이 고달파진다. 그게 한미관계의 숙명이다. 지금 우리는 그런 숙명을 목도하고 있다. 설마 하던 한미관계에 파열음이 요란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식은 꽤 충격적이다. 경제적 관점에선 FTA 폐기는 선뜻 이해가 안 가는 무리수다. 외교·안보적 불만이 뿌리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한미 FTA는 미국 입장에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수도 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가고 있다. 내가 늘 말해왔듯이"라는 글까지 올렸다. 외신들은 `트럼프가 한국을 후려쳤다(lash out)`는 제목을 달았다. 긴말이 필요 없다. 비정상적인 갈등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미 갈등은 필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악영향은 중국의 사드 보복처럼 불편하고 억울한 수준이 아니다. 국가 간 교역 규모 따위를 거론할 게 아니다. 미국은 기술과 국제교역의 룰을 세우는 나라다. 한국 경제에 `우산`을 씌워주는 군사적 슈퍼 파워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의 사활적 이익이 달려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실 워싱턴DC와의 숙명은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했던 적이 많았다. 1997년 12월 백악관 시추에이션룸에서 열린 회의가 대표적인 예다. 한국이 처한 안보적 특수성이 경제 이슈를 압도했다. 주무장관인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은 월리엄 코언 국방장관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한국 구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국 경제에 활로를 열어준 한미 통화스왑도 안보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2004년 6월 시작된 한미 FTA 교섭은 숙명을 한국이 적극 활용한 케이스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들은 고위 당국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미 간 마찰이 심각해지면서 정치·외교적인 갈등 요인을 한미 FTA를 통해 보완하자는 의견이 노무현정부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반미(反美)면 어떠냐`던 시절에 막후에서 벌어진 외교전의 한 단면이다. 실제로 청와대에서 열린 여당 당직자들과의 비공개 만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 추진 배경을 설명하며 `경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한미 동맹 강화 효과만 얘기했다고 한다.


이런 전통을 다시 일깨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트럼프의 기행(奇行)만 탓할 때가 아니다.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수습 노력이 필요하다. 한시가 급하다.

[이진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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