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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이진우

[매경포럼] 경제정책의 함정, 善意

  • 이진우
  • 입력 : 2017.06.12 17:30:02   수정 :2017.06.12 21: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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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든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의 말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서양 속담도 있다. 세상 범사에 참고할 만한 명언들이지만, 특히 경제정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딱이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선의 그 자체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뜻이 좋았어도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그게 곧 악(惡)이다. 최초의 선의는 부질없는 핑곗거리로 전락할 뿐이다. 가깝게는 `단통법`이 그랬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다. 2014년 10월부터 시행됐는데 당초 취지는 거룩했다. 서민 입장에서 휴대폰을 새로 사려면 목돈이 들어간다. 이런 휴대폰을 누군 비싸게 사고, 누군 싸게 사는 걸 막아보겠다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다. 이동통신사의 지원금 한도(현재 37만9500원)를 묶어놨다. 법은 이것을 개선이라고 규정했지만 실제 결과는 개악이었다. 모두가 비싸게 휴대폰을 사게 됐다.

도로명 주소 역시 선의가 재앙이 된 사례다. 2006년 법이 제정돼 2014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이 발효된 지 3년이 흘렀건만 도대체 이 법을 왜 만들었는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기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옛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 동과 아파트 이름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따로 기억할 것도 없다. 하지만 `새 주소`인 도로명 주소는 모른다. 솔직히 알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알아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끔 운전할 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을 사용하는데, 그때도 당연히 옛 주소로 행선지를 입력한다. 도로명 주소보다 편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애물단지를 왜 만들었을까. 전국적으로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등을 설치하느라 4000억원의 국민 혈세가 쓰였다.

부동산업계에선 미터 단위 의무화로 울화통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다. 일간신문 광고에서 부동산의 넓이를 미터법으로만 표기하도록 한 게 2007년 7월부터다. 전용면적 85㎡짜리 아파트를 전용면적 25평형으로 표기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얘기였다. 이어 2013년에는 단속범위를 인터넷, 부동산중개사무소, 현수막, 모델하우스 등으로 확대했다. 명분은 오차를 줄이고 사용자들의 혼란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정확한 단위를 쓰자는 `좋은 뜻`은 아직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10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평 단위를 사용한다. 더 편하고 직관적으로도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없애지도 못할 평 단위 불법화에 쓰인 막대한 비용과 행정력은 누가 책임져야 하나.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려면 치밀한 계획과 각고의 노력, 적절한 여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현실을 무시하고 선의를 밀어붙이면 엉뚱한 피해가 생긴다. 이른바 `콜래트럴 대미지(collateral damage·부수적 피해)`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여가 지났다. 해묵은 문제들, 이른바 적폐를 바로잡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가계 통신비 인하, 수능 절대평가,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유보통합), 4대강 보 상시개방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다.

기자는 문재인정부의 선의를 믿는다.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도 이런 선의를 국민들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선의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재벌 대기업을 겨냥한 규제에 중소기업이 나가떨어진다거나, 비정규직을 줄이려다 전체 일자리가 감소하는 식의 부작용은 피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문재인정부 스스로의 선의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결과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새 정부의 모태 격인 노무현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을 떠올린다. 부동산 투기를 막아 미래세대에 희망을 준다는 `좋은 뜻`과 함께, 경제 문제에 도덕을 갖다붙였다가 화(禍)를 키웠다는 사실도 또렷이 기억한다. 유사한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될 것이다.

[이진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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