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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이진우

[매경포럼] 불능국가 대한민국

  • 이진우 
  • 입력 : 2017.04.17 17:07:38   수정 :2017.04.17 17: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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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 그에 따른 조기 대선. 한국 정치는 글로벌 뉴스 제조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하거나 한심한 소식이 쏟아진다. 반면 경제는 시들시들하다. 고질적인 내수 침체와 일자리 부족, 특히 청년실업 사태로 활력이 뚝 떨어졌다.
수출이 일부 되살아났다지만 2014년 수준을 회복하려면 갈 길이 멀다. 최근엔 외교안보도 휘청거린다.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가능성까지 회자되면서 가짜 뉴스가 판친다. 안팎으로 나라가 어지럽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오늘도 별 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혹자는 한국이 비로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국가가 됐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대통령이 없어도, 외교적 재난에 직면해도, 경제가 어려워도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사고와 소란도 일하는 과정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잔뜩 움츠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고도, 소란도 없다. 어쩌면 지금이 딱 그런 상태인지도 모른다. 고도의 부작위(不作爲), 극단적인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잠깐 동안의 평안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가만 생각해보시라. 국내외 현안을 맞아 한국이란 나라가 국가 차원에서 결심하고 성과를 낸 것이 무엇인지. 최근 몇 년 동안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저 시간을 보내며 요행을 바랐을 뿐이다. 지금 한국을 괴롭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근본적 해결을 회피한 채 시간만 끌다가 더 악화된 것들이다. 허송세월의 대가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관성대로 살아간다면 당분간은 평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다. 언젠가 발생하는 `치명적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능(不能) 국가에 가깝다. 국가 시스템이 변화를 거부하는 쪽으로 퇴보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심각하기로는 정치의 불능이 으뜸이다. 선거철을 맞아 대선 후보들이 연일 공약을 발표하며 달라진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어떤 후보는 정부 지출을 확 늘려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고, 어떤 후보는 학제를 통째로 바꾸겠다고 호언장담한다. 부처를 떼었다 붙이는 정부조직 개편도 빠지지 않는 단골메뉴다. 어림없는 얘기다. `누가 돼도 똑같다`는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자기만의 정책을 관철하기 어렵다. 쟁점 법안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만 본회의 상정이 가능한 탓이다. 이런 국회선진화법을 돌파하려면 과점(oligopoly)을 이룬 정치세력들의 도움이 필수적인데 언감생심이다. 정책의 변질이 불가피하다.

다음은 결단의 불능이다. 민간기업의 경영자가 미래를 내다보고 내린 결정이라도 항상 뒤통수가 찜찜하다. 사후적으로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배임죄를 걱정해야 한다. 감옥갈 각오가 서 있지 않다면 100% 확신이 없는 결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나중에 말썽이 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합리적 결정이었더라도 일단 찍히면 끝이다. 다른 엉뚱한 이유를 걸어서라도 망신을 준다. 결단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또 다른 불능의 영역은 경쟁이다. 이게 정말 고약하다. 지금 국회에 발의된 법안의 절대다수는 경쟁 촉진이 아닌 경쟁 회피에 초점을 둔 것들이다. `약자 보호` `공정` `상생`을 명분 삼아 `경쟁`이라는 생존원리를 무시한다. 우리끼리 나눠 먹고살 수 있는 처지라면 그래도 좋을 것이다. 글로벌 경쟁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한국에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딱 21일 뒤다. 새 정부가 탄생한다. 솔직히 유능한 정권은 바라지도 않는다. 뭐든 바꿀 수 있는 가능(可能) 정권이길 기대한다.
국정체계와 철학의 대개조가 불가피하다. 소통에 기반을 둔 협치, 합리적 결정에 대한 존중, 경쟁의 복원이 `바뀔 수 있는 나라`의 요체다. 국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대통령감을 잘 골라내는 것이다. 현재로선 그 수밖에 없다.

[이진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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