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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데스크 박봉권

[매경데스크]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 박봉권
  • 입력 : 2017.04.16 17:21:31   수정 :2017.04.16 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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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영어표현이다. 포커게임을 할 때 딜러가 카드를 돌린다. 이때 딜러 앞에 놓는 마커가 buck이다. 카드를 돌리는 책임이 딜러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The BUCK STOPS here!"라고 적힌 팻말을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놨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원자폭탄 투하, 한국전 참전 등 트루먼 대통령은 유독 고뇌에 찬 결단의 순간을 많이 맞았다. 그때마다 그는 금과옥조로 삼은 표현을 곱씹으며 어깨를 짓누르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반면 45대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즉흥적이고 네 탓만 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유세 기간 내내 경제적으로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는 원색적 비난을 퍼부으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위협하더니 갑작스레 그럴 일이 없다고 한다. 맹렬히 비난했던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저금리 정책을 이제는 계속 유지하라고 압박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한물갔다고 하더니 이제는 중요하단다. 하도 오락가락하니 도대체 뭐가 진심인지 알 수 없다. 도대체 트럼프의 국정철학이 뭐냐는 질문은 던져봐야 소용없다. 철학이라는 게 아예 없기 때문이다. TV를 시청하다 혼자 흥분해서 트위터를 띄우고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다 아니면 말고 식이다. 딸과 사위를 실세로 만들고 자신이 소유한 리조트에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정상회담을 여는 걸 지적하는 언론에 오히려 가짜 뉴스만 생산한다며 책임 전가를 한다. 트루먼과 트럼프의 상반된 행보를 꺼내든 것은 요즘 어느 때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말이 절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회담 후 일주일도 안 돼 시진핑이 이례적으로 트럼프에게 전화를 할 정도로 북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을 배제한 채 미·중이 일방적으로 한반도 상황을 재단하는 코리아패싱도 뚜렷하다. 중국의 전방위적 사드(THAAD) 보복에다 미 통상 압박이 한국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정치권과 학계는 유력 대선주자 줄서기에 매몰됐고 정권 교체기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면피성 일처리가 반복된다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조기 대선까지 겹친 요즘은 아예 손을 놓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불요불급한 외유성 해외 출장에다 근무 시간만 대충 때우는 적당주의와 무사안일주의가 판을 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나마 요즘 아주 예외적(?)으로 휴일 없이 바쁜 곳이 바로 금융위원회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P플랜(Pre-packaged Plan·워크아웃+법정관리) 위기에 직면한 대우조선해양과 씨름 중이다. 구조조정 총대를 멘 임종룡 위원장은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는 전언이다. 대우조선 처리를 차기 정권에 넘기고 싶은 유혹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네트워크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해운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금융논리로 한진해운을 파산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터라 더 그랬을 듯하다. 한진해운 트라우마에도 승부수를 던진 임 위원장은 대우조선이 회생하면 본전이고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 그런데 주변 상황이 녹록지 않다. 대우조선 지원을 반대하는 산업부는 대우조선 파산 시 피해 규모가 금융위 발표의 3분의 1 수준인 17조원에 그친다는 내부자료를 흘려 분란을 일으켰다. 사실 59조원이든 17조원이든 대세에 지장이 없다. 17조원이라고 해서 대우조선 회생을 결정한 금융위 논리를 뒤집을 만한 강력한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여 나중에 대우조선이 잘못되면 `우린 할 만큼 했으니 책임 없다`라는 명분 쌓기 꼼수에 불과하다는 싸늘한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민연금은 모든 채권자들의 고통 분담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만기 연장 회사채 상환보증을 요구하면서 채무 재조정안 동의 결정을 질질 끌었다. 3900억원 규모 대우조선 회사채를 들고 있는 국민연금이 채무 재조정을 거부해 P플랜에 들어가면 더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채무 재조정안을 걷어차는 게 배임행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우조선 회생 여부를 결정하는 운명의 한 주가 밝았다. 좌고우면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대우조선이 세 번째 혈세 지원을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보신주의와 적당주의가 활개를 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buck을 자기 앞에 놔야 한다.

[박봉권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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