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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데스크 이은아

[매경데스크] 커제의 눈물, 우리의 한숨

  • 이은아 
  • 입력 : 2017.06.15 17:32:37   수정 :2017.06.15 17: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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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대국을 마친 바둑 세계랭킹 1위 커제 9단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의 눈물은 이제 인간은 바둑에서 인공지능(AI)을 이길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인간의 기를 죽여 놓은 알파고는 홀연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바둑계를 은퇴한 알파고는 기능을 갈고닦아 머지않아 또 다른 인간계에 진출할 것이다.
글로벌 인터넷기업 프로젝트매니저인 A씨는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미국 출장길에 지켜본 후 곧바로 한국에 있는 초등학생 딸에게 메일을 보냈다. 빠른 연산을 위한 연산 학습지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겠다고. 단순 암기식 공부보다는 다양한 책을 읽고 폭넓게 사고하는 방법을 익히라고.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은 그런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에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A씨와 같은 결심을 하지 못한다. 여전히 아이들을 국·영·수 학원에 보내고 선행학습을 시킨다. 생각이 모자라서도,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바로 눈앞의 입시제도와 학교 시험을 외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4~5세부터 연산 학습지를 풀고, 초등학생이 되면 선행학습을 시작한다. 초등학생이 고등수학을 배우는 것도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초시계로 시간을 재며 문제를 푸는 학원에 다니는 중·고등학생들도 많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계처럼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쉬운 문제들을 기계적으로, 빠르게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살벌한 내신 경쟁 때문에 계산기에 맡겨도 될 단순 계산 속도를 높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다.

수학뿐만이 아니다. 시험기간이면 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한다.

2년 전 서울의 한 중학교 시험에는 식재료 크기를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 깍두기 무는 2㎝, 미역국의 미역은 4㎝, 도라지 생채의 도라지는 6㎝로 잘라야만 정답이다(당시 창의성을 죽이는 교과서와 시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썼다가 `깍두기 무를 먹기 좋은 크기라고 대충 적으면 조리업계에서 반발한다`는 교육부의 웃지 못할 해명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두 문제 차이로 전교 등수가 수십 등씩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을 한 아이들과 부모는 `이런 것까지 외울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 제기 대신 현실에 순응하는 쪽을 택하고 만다.

영국에서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다 귀국한 B씨 이야기는 더 기가 막힌다.

B씨 아들은 처음에는 한국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은 배제한 채 교과서에 나온 것만 정답이라고 인정하는 평가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다. 빡빡한 학원 스케줄에는 `아동학대` `인권침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아들은 어느덧 주입식 교육 신봉자로 변했다. 생각할 필요 없이 외우기만 하면 되는 한국식 공부가 더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이 계산도, 번역도 해준다는 이 시대, 우리 아이들은 인공지능에 백전백패할 것들을 배우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 개편 논의도 `수시 확대냐, 정시 확대냐`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 `특목고 폐지냐, 유지냐`의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공부하는 내용과 시험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기를 수 있는 능력은 변화가 없을 것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기를 수 없다"고 한탄한다.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저서 `공부논쟁`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시험 잘 치는 사람들에게만 과학을 맡겼어요. 그 결과로 새로운 발견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단 하나의 초가집도 짓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계속 망하는 거예요."

수박 겉 핥기 식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하고 아이들의 학원 목록에 코딩학원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원하는 인재를 기를 수 없다.

커제의 눈물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은아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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