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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데스크 이은아

[매경데스크] 계산 똑바로 합시다

  • 이은아
  • 입력 : 2016.12.29 17: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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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면 대학생들은 더 바빠진다. 인턴, 서포터스, 대학생 기자단, 홍보대사, 마케터, 해외원정대 등 다양한 이름의 대외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1980~1990년대 대학생들은 동아리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MT며 농활을 떠났지만 지금 학생들은 다르다. 이들이 참여하는 활동은 대부분 기업이나 기관이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지난해 대학생 3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런 대외활동은 약 1000개에 이르고, 대학생 39.5%가 한 차례 이상 대외활동 경험이 있다.

문제는 청년들에게 경험과 직무교육을 제공한다는 취지와 달리 학생들의 노동력이 기업 홍보나 허드렛일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A씨는 농구시즌인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스포츠마케터로 활동했다. 스포츠마케팅을 배우고 싶어 치열한 경쟁까지 뚫고 선발됐지만, A씨가 한 일은 마케팅과는 무관한 농구경기 전후 기물정리 같은 단순 업무였다. 이런 일이라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 될 것 같았지만 취업을 위한 스펙 한 줄이 아쉬운 그는 군말 없이 조명을 옮기고 의자 커버를 씌웠다. 농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탓에 학교 수업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알바생`이 아닌 `마케터`였던 A씨는 금전적 보상 대신 농구점퍼와 기념품 몇 개를 챙겼을 뿐이다. 물론 수료증은 남았다.

유통업체 산학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한 B씨도 하루 12시간씩 잡무에 시달렸다. 체계적인 교육을 기대했지만 편의점 알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역시 `알바생`이 아닌 `실습생`이었기 때문에 `소정의 실습비` 하루 1만원에 만족해야 했다.

`열정페이`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작년에는 한 달에 10만원을 받고 디자인업체에서 매일 야근하던 인턴의 폭로로 유명 디자이너가 사과했고, 일당 5만원을 받는 인턴에게 정규직과 똑같이 영업업무를 시킨 소셜커머스업체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최근에는 이랜드파크가 아르바이트생 4만여 명의 인건비 84억원을 체불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시름하는 학생들은 학점, 영어성적과 더불어 취업을 위한 `3대 스펙`으로 자리 잡은 대외활동을 외면할 수 없다. 스토리 하나라도 더 만들어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자기 돈까지 써가며` 대외활동에 매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들은 이들의 절실함을 이용해 무보수 노동력을 확보한다.

젊은이들이 적은 임금을 받더라도 제대로 경험을 쌓는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유명 디자이너의 재능을 배우기 위해 디자이너 사무실을 찾지만, 이들이 배우는 것은 디자인이나 장인정신이 아니라 허드렛일이다. 차라리 학원을 열어 수강생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허드렛일은 다른 직원을 채용해 시키는 것이 떳떳할 것이다.

청년위원회가 일경험이 있는 청년 5219명에게 물었더니 53.6%가 열정페이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지만, 이들 중 63.6%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사결과를 뒤집어보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제2, 제3의 이랜드파크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아" "경력을 쌓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식의 계산법은 잘못됐다. 강요된 열정은 더 이상 열정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일을 배울 기회뿐 아니라 `정당한 보상`을 배울 기회도 함께 줘야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다.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해 스승님을 찾아가 폭포수 아래에서 수련하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한 수 전수받기를 기다리는 영화 속 주인공이 필요한 시대는 더 이상 아니지 않은가.

[이은아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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