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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데스크 이은아

[매경데스크] 네 잘못이 아니야

  • 이은아 
  • 입력 : 2016.06.23 17:21:05   수정 :2016.06.23 17: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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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섬마을에서 일어난 학부모와 주민의 여교사 성폭행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경찰 112 종합상황실에 신고하고, 병원에서 DNA를 채취했다. 묻힐 뻔했던 일이 공론화됐고, 가해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도서벽지 여성 근로자 안전대책이 논의되고, 미제로 남아 있던 9년 전 성폭행 사건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사람들은 그의 용기 있는 대응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하지만 용기를 낸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격려는커녕 2차 피해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김유미 씨(가명)는 사건 발생 직후 담당 팀장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가해자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혐의를 부인한 가해자 편이었다. 김씨가 계속 문제 제기를 하자 동료들은 `독한 ×`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먼저 꼬신 거 아니냐" "돈 받아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는 눈총도 쏟아졌다. 계약직이었던 김씨는 결국 업무 태만을 이유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가해자는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다. 김씨는 결국 형사고소를 택했고, 긴 공방 끝에 법원은 최근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년여의 싸움은 김씨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돌을 던진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맞은 사람이 해명을 해야 했던 것이다.

현행법상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행위자를 징계해야 하고, 피해자에게는 불이익을 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회사가 문제를 은폐하는 데 급급한 사이 피해자들은 왕따와 보복인사 같은 2차 피해에 시달린다.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 역시 여전히 곱지 않다. 세상은 피해자에게 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느냐고, 왜 남자와 단둘이 있었느냐고, 왜 술에 취했느냐고 다그친다. 성범죄를 유도했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치마 길이가 짧은 것이, 화장을 진하게 한 것이, 술에 취한 것이 여성이 성추행·성폭행을 묵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길 가는 남자의 바지가 짧거나 술에 취했으니 마구 때려도 된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어떤 상황에 있든 성적자기결정권은 본인에게 있다. 본인을 대신해 다른 사람이 성적 행위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여성이 유흥업소에서 일한다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강월구 여성인권진흥원장은 "폭행은 100% 가해자 잘못인데 유독 성폭행에서만은 피해자를 탓하는 인식이 있다"며 "성폭력특별법 등으로 제도는 거의 갖춰졌지만 사회적 인식이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 역시 2차 피해를 유발한다. "저 여자가 그 여자래"라는 수군거림은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는 하는 것을 방해한다. 2008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도 직접적으로 슬퍼한 것은 친구들이 놀린 일이라고 했다.

구성애 푸른 아우성 대표는 `니 잘못이 아니야`라는 책에서 어린 시절 아픔을 털어놓는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엄마는 두 팔을 벌리면서 엄마 품에 오라고 했다… 뭔가 이상하고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정리는 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마음속에 그 엄청난 일이 내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것은 아닌지… 엄마는 드디어 내 일생에 큰 전환점이 될 그 한마디를 던지셨다. "너는 아무 잘못 없어, 그 오빠가 잘못한 거야."… `너는 잘못 없다`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의미인지 아무도 모를 거다. "왜 가만히 있었어? 막 대들지 그랬어?" "그러니까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오락실에 가지 말라고 했잖아?"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성폭행당한 아이의 부모들이 내뱉는 얘기들이다.
그 한마디는 평생 아이의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힌다. 0%의 잘못이 100%의 잘못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아이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다. 상처 입은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우리는 말해줘야 한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이은아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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