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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심윤희

[매경포럼] 아파트 3.0

  • 심윤희
  • 입력 : 2017.10.09 17:18:49   수정 :2017.10.09 19: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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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의 아파트에 대해 쓴 책 `아파트공화국`에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1993년 서울의 5000분의 1 축척 지번 약도를 동료 도시계획가에게 보여줬더니 그가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했다는 대목이다. 바로 반포의 한강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두고 한 말이다. 네모반듯한 모양에 동일 층수, 동일 간격으로 늘어선 건물이 획일적인 병영을 연상시켰던 것이다.
1973년 지어진 반포주공1단지는 1960년대의 서민용 아파트와는 차별화해 지은 것으로, 강남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당시 열악한 기술로는 주거 기능을 극대화한 빽빽한 성냥갑 아파트밖에 지을 수 없었다. 아파트가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등 커뮤니티시설을 갖추고 주차장을 지하화해 지상을 공원으로 꾸민 2세대 아파트의 등장이었다. 아파트의 고립·폐쇄성을 커뮤니티시설 확대로 풀고, 콘크리트의 삭막감을 조경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무렵인 2007년 부동산부에 근무할 때 `10년 후 주거문화`란 기획 취재를 한 적이 있었다. 전문가들을 설문하고 해외 취재를 통해 10년 후 주거 트렌드를 예측해봤는데 아파트 독주 체제가 깨지고 주거다양성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소득 증가, 균질한 주거 형태에 대한 반발, 해외 주거문화 영향 등이 새로운 주거 유형의 창출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타운하우스, 단독주택 등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보면 당시의 예측은 빗나간 셈이다. 새로운 `라이징 스타`는 없었고 아파트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2005년 전체 주택의 53%를 차지했던 아파트는 2016년 1000만가구를 넘기며 60.1%로 비율이 늘어났다. 서구에서는 도시 저소득층의 거주지이지만 한국에서는 `욕망의 상징` `최고의 재테크 상품`이 된 지 오래다. 아파트의 인기는 재테크적 가치 때문이기는 하지만 아파트의 변신과 진화도 수요를 창출한 측면이 있다.

최근 끝난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은 아파트의 무한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보여줬다. 수주전에 참여한 건설사들은 고층 꼭대기에서 한강을 보며 수영할 수 있는 `스카이 인피니티풀`, 두 개 동의 최상층을 연결한 `스카이 브리지`, 800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 실내 아이스링크장, 실내 워터파크 등 특급호텔 뺨치는 커뮤니티시설과 곡선미를 살린 외관 등을 선보였다. 컨시어지, 조식 등 입주자 서비스로 주거 패러다임 변화도 예고했다. 서초 한신4지구, 송파 잠실 미성·크로바 재건축 수주전에도 인피니티풀 등 커뮤니티시설이 제안됐다.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아파트 3.0 시대`가 가까워진 것이다. 과거 아파트는 사고 싶은 집이었지 살고 싶은 집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3.0`은 살고도 싶고, 사고도 싶은 집이 될 것이다.

미세먼지 차단 기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을 접목해 미래 아파트를 구상하는 건설사들이 늘고 있다. 건축적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디자인과 설계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가 3.0, 4.0으로 버전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생각만큼 순조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첩첩 규제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의 35층 규제다. 동일한 용적률 내에서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과 다채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조망의 공공성`을 이유로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묶어놓고 있다. 층수 제한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시대착오적 규제다. 그 기저에는 층수 규제 완화가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소수 특권층에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만 하기보다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서 규제는 걷어내야 한다. 뉴욕 배터리파크 등 해외에서도 특화된 디자인의 랜드마크 주거단지들이 도시 미관을 바꾸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재도입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분양가상한제도 `아파트 3.0` 시대와 충돌한다.
과거 경험상 분양가상한제는 `신상 아파트` 가격을 낮춤으로써 집값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있었지만, 품질 저하라는 그늘을 드리웠다. 다양한 주거 수요를 무시하는 것은 반시장적이고 주거문화의 후퇴를 부르게 된다.

한강변 붕어빵 아파트들의 재건축 연한이 일제히 다가오고 있다. 규제를 고수하다가는 또다시 한강변은 성냥갑과 군사기지 스타일의 아파트로 뒤덮이게 될지도 모른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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