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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심윤희

[매경포럼] 마이크를 겁내지 않는 대통령

  • 심윤희 
  • 입력 : 2017.04.24 17:19:55   수정 :2017.04.24 17: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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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 연설을 할 때였다. 한 중년 남성이 트럼프 지지를 외치며 돌출 행동을 하자 경호원이 저지에 나섰는데,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를 말렸다. 그러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우리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둘째, 군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그는 나라를 지켰던 분이었을지 모른다. 셋째, 우리는 어르신을 존중해야 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오바마는 그의 인상착의를 파악하고 국민의 권리와 군인에 대한 예우, 노인 공경이라는 설득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는 "넷째, 야유하지 마세요. 대신 투표하세요"라며 자기 주장으로 마무리했다. 준비된 연설이었을 리 없다. 오바마의 관찰력, 순발력, 표현력이 빚어낸 즉흥 연설에 대중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당시 우리는 대통령 연설문 유출이 드러나면서 시작된 `최순실 게이트` 파문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시기였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저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내가 남의 나라 대통령을 탐낸 것도 처음이었다.

즉흥적으로 이런 연설을 할 만큼 서양의 연설과 토론의 역사는 유구하다. 말로 대중을 설득하고 매료시킨 사람이 리더가 되는 것은 그리스·로마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 묘사된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은 말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가 "시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며 이성에 호소하자 대중은 "와"하고 환호한다. 그러나 그다음 안토니우스가 "가난한 사람들이 울면 시저도 울었다. 나는 시저에게 세 번이나 왕관을 바쳤지만 그는 거절했다. 이게 야심인가"라며 감성을 건드리자 대중은 또 "와"하며 동요했다. 결국 연설에서 밀린 브루투스가 패배했다. 이 사례는 표변하는 대중의 속성을 언급할 때 회자되기도 하지만 결국 리더를 뽑는 것은 대중이고, 대중은 리더의 말 속에서 인간성, 비전, 논리, 실행력을 유추해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연설, 토론의 역사는 일천하다. 대선 TV 토론이 도입된 것도 1997년이었다. 특히 지난 4년간 한국은 토론의 암흑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미 써온 원고를 읽었고 장관들은 받아 적기에 바빴다. 대통령 탄핵 사태는 토론, 소통에 대한 국민의 억눌린 열망을 증폭시켰다. 최근 대선 TV 토론의 높은 시청률은 토론을 통해 실력을 검증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미국식 스탠딩 토론, 원고 없는 토론이 펼쳐진 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하지만 세 번 진행된 TV 토론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5명이나 되는 후보들의 난상 토론, 정책과 비전이 실종된 네거티브 공방, 핵심을 비켜 가는 얼렁뚱땅 답변, 미래보다 과거에 머문 논쟁 등은 국민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직설화법형, 허허실실형, 자책골형, 답변회피형 등 토론 부재 교육의 산증인들이 만든 불협화음이랄까. 오죽하면 후보들끼리도 "유치한 토론 태도" "초등학교 감정 싸움"이라며 치고받겠는가. 그런 과정에서 실력과 우열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대통령이 꼭 토론을 잘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심지어 우리는 달변가에게 `말만 번지르르하다`며 배척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토론 실력, 말솜씨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이 대통령의 머릿속을 볼 수 없으니 접점은 오직 말 뿐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하는 권력(power to persuade)`이라는 말이 있듯 대통령은 국회와 국민을 끊임없이 말로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야당 당수와 의원들이 총리에게 질의하는 PMQ(Prime Minister`s Questions)가 열린다. 총리는 수많은 질문에 숙지된 지식으로 원고 없이 응답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출근길 만나는 기자들에게 경제, 안보 이슈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밝힌다. 세계 리더들은 마이크만 대면 모두 웅변가가된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대통령의 4년 연속 국회 시정연설이 빅뉴스가 되고, 대통령 신년기자 회견에서는 `사전 각본` 논란이 일곤했다.

마이크 잡는 것을 겁내지 않는 대통령, 말로 소통과 공감의 정치를 할 수 있는 대통령, 우리도 그런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됐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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