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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 데스크 박정철

[매경데스크] 촛불 정치만이 정답은 아니다

  • 박정철
  • 입력 : 2017.01.15 17:19:17   수정 :2017.01.15 19: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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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에 따르면 로마는 과중한 세금과 낭비, 쾌락 문화, 가정 파괴, 종교적 권위의 붕괴 등이 겹치면서 멸망했다.

로마 몰락의 첫 징조는 역설적이게도 제국 확장에 앞장서 5현제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 황제 때 나타났다. 트라야누스는 아동 빈곤 해소를 위해 최초의 복지 제도를 시행하고, 시민들에게 오락거리로 검투사 시합을 제공하다 비용 때문에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했다.
트라야누스 사망 후 집권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더 나아가 국민이 15년 동안 국가에 진 빚을 탕감했다. 자신의 약속을 입증하려고 근위병을 동원해 광장에서 대출장부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이 조치로 그의 인기는 높아갔지만 결국 로마의 재정을 갉아먹으면서 파탄으로 이어졌다. `강대국의 경제학`을 쓴 글렌 허버드와 팀 케인은 "당시 아무리 둔한 로마 시민이라도 절약은 바보짓이고, 빚을 낼 수만 있으면 가능한 한 많은 빚을 지려 했다"며 "도덕적 해이에 대한 황제의 무지가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진단한다.

새삼 로마의 쇠망사를 언급한 것은 요즘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그때와 닮아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 대부분 주자들이 촛불 민심에 화답하듯 `구체제 적폐 청산`을 외치며 재벌 해체와 부당이득 환수, 기본소득 도입 등 강경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우리도 진지한 고민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처럼 4대 기업을 정밀 겨냥해 금산분리, 다중대표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노동자추천이사제, 을지로위원회 등 백화점식으로 망라한 정책들을 내놓은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여파가 겹쳐 실업자가 100만명, 청년실업률(9.8%)이 역대 최고인 고용 한파 시대에 일자리와 성장 정책은 뒷전인 채 재벌 때리기에만 치중하면 자칫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고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아 고용 시장이 꽁꽁 얼어붙을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정경유착과 대기업의 불법·편법 지배구조,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려면 곪고 터진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 수술식 정책이 필요하다. 재벌 오너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엄벌하는 게 당연하지만, 거미줄식 대책으로 글로벌 기업의 손발까지 묶어선 곤란하다. 국민이 재벌 비리의 단죄를 요구하면서도 자녀들은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에 보내고 싶어하는 것은 이들 기업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위 대권주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처럼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해 일자리 창출에 진력을 쏟지는 못할망정 촛불 민심에 기대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내리는 대책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국가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대권주자들의 외교안보 인식도 문제다. 지금 한반도는 사드 배치를 놓고 중국이 경제보복과 군사도발을 서슴지 않고, 일본은 위안부 소녀상 문제에 반발해 한일 통화스왑 협상 중단을 선언하는 등 구한말과 비슷한 백척간두의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초당적 자세로 국익과 실리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일부 주자들은 국민 감정을 앞세워 합의안 폐기와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국가 생존이 달린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하고 있다. 주변국과의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번복했다간 한순간에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고 신용불량 국가로 낙인찍힐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야권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한미 정부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된 사드 배치는 존중해야 한다"고 밝힌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안 지사의 지적대로 외교안보 정책은 각 정파와 정권을 뛰어넘어 국론을 모아내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당장 유권자 표심을 잡기 위해 여론을 좇기보다 욕을 얻어먹더라도 원칙과 소신을 갖고 대중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20세기 가장 모범적 정치인으로 꼽히는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1918~2015)는 회고록 `구십평생 내가 배운 것들`에서 "심리적 냉철함을 견지하고, 늘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태도는 정치 지도자로서 섣부른 결정으로 과오를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었다"고 했다. 지금처럼 갈피를 잡기 힘든 혼돈의 시기에 대선주자들이 한 번씩 곱씹어봐야 할 경구다.

[박정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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