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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24시] 남녀의 공존·공감 파괴하는 '혐오'

  • 강인선 
  • 입력 : 2018.07.10 17:18:59   수정 :2018.07.10 17: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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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세 번째 시위가 열린 7일 서울 혜화역 부근. `제기(재기)해`라는 참석자들의 외침이 서너 번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제기(재기)하십시오`라고 외쳤다. `곰`이라는 글자로 얼굴을 가린 여성이 꿇어앉아 벌이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의미의 `제기`"라고 해명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 역시 중의적 의미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기자가 함께 웃을 수 없었던 까닭은 무분별한 조롱에 동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한 네티즌도 "일베(일간 베스트)를 한남(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라 욕하던 사람들이 `재기`란 단어를 쓰는 걸 보고 동조하지 않기로 선언했다"고 밝혔다. 7일을 기점으로 혜화역 시위를 바라보는 여론은 크게 바뀐 분위기다.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혐오가 연대할 수 있는 수많은 아군을 적으로 돌려 또 다른 혐오를 낳은 결과다.

"재기하다"는 남성 인권운동가 성재기 씨가 2013년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사망한 것을 희화화한 `자살하라`는 비하성 표현이다. `곰`은 문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을 거꾸로 한 단어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단어다. 극단적 성향의 남성중심 인터넷 사이트에서 시작된 조롱 방식이다.

폭력을 가한 이들과 동일한 방식을 차용한 자극적 문구와 편가르기식 공격은 `미투 운동`으로 상징되는 여성계 목소리의 본질을 호도한다는 점에서 자기파괴적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3차 집회에 나온 큰 이유가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있다"고 말했다.
변용카메라 등록제, 몰카 영상의 유통 차단 등 실질적인 요구에는 귀를 닫고 `공공화장실에 50억원어치 탐지기 설치` 등 보여주기식 대책만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극적인 표현 방식은 이슈의 본질을 덮었고 사회에 전달된 울림은 `재기` 같은 저급한 구호에 그쳐 메아리는커녕 부메랑만 돌아오고 있다.

여성 몰카범죄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악(惡)을 혐오하는 것과 그 자체로 선악으로 분류할 수 없는 집단을 무작정 혐오하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 `재기`해야 할 대상은 공존과 공감, 토론을 원천 봉쇄하는 무분별한 혐오다.

[사회부 = 강인선 기자 rkddls44@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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