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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칼럼] 자본 없는 자본주의

  • 장경덕 
  • 입력 : 2018.01.16 17:31:50   수정 :2018.01.16 17: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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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에 태어난 카를 마르크스가 본 자본주의와 200년이 지난 지금의 자본주의는 많이 다르다. 사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에게 빚을 졌다. 이 체제는 19세기 후반에 나온 그의 묵시록 덕분에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반드시 끝장날 거라는 그의 계시는 각국 정부가 자유방임에서 벗어나 공황과 유혈 혁명을 막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게 했다.
자본주의는 지금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조너선 해스컬과 스티언 웨스틀레이크가 쓴 `자본 없는 자본주의(Capitalism without Capital)`라는 책 제목이 잘 말해준다. 책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식, 소프트웨어, 브랜드, 네트워크, 신뢰관계 같은 무형의 자본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세계를 그린다.

마르크스가 살던 때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가장 지배적인 자본은 농경지였다. 산업혁명이 진전되면서 공장과 기계가 더 중요해졌고 20세기에는 금융자본의 지배력이 커졌다. 그러나 지금 토지나 공장, 주식보다 더 귀한 건 무형의 지식과 신뢰자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생각해보자. 이 거대 기업의 공장과 장비는 전체 몸값의 1%밖에 안 된다. 이 회사가 투자한 무형자본은 기계처럼 되팔 수 없는 매몰된(sunk) 비용으로 인식된다. 이 회사의 혁신은 거의 무한히 확장할 수 있고(scalable), 다른 혁신과 어우러져 상승효과(synergy)를 내며, 그 효과가 경제 전체로 확산(spillover)된다.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같은 회사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무형자본이 전통적인 유형자본보다 중요해지는 체제가 자본 없는 자본주의다.

이런 체제에서 경제는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무형자본의 놀라운 확장성 때문에 수익성 높은 거대 기업이 부상하지만 경쟁에서 밀린 대다수 기업은 혁신 투자를 할 의지와 여력을 잃게 된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몇몇 간판 기업을 뺀 나머지 기업은 생산성이 되레 떨어지고 야성적 충동을 잃어가는 게 현실이다.

그에 따라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가치 있는 무형자본에 투자한 기업과 그러지 못한 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뛰어난 인재가 잘나가는 몇몇 기업에 몰리면서 소득 불평등이 커진다. 혁신이 확산되고 인재가 몰리는 도시의 집값은 치솟고 그러지 못한 대다수 지역은 침체되면서 부의 불평등도 심해진다. 강남 집값 문제의 바탕에는 이런 요인들이 깔려 있다.

무형자본 투자는 매몰비용과 불확실성이 커 벤처캐피털의 모험 투자가 중요하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은행 대출이 주를 이루는 한국 금융은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 산업구조는 하드웨어 제조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소프트웨어는 미미한 게 문제다. 법과 규제체계, 기업지배구조 같은 소프트 인프라스트럭처가 어설픈 것도 투자에 걸림돌이다.

무형자본의 시대에는 공공정책도 낡은 틀을 완전히 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지식의 기반을 넓히고 다지는 일이다. 그 핵심은 교육개혁이다. 우리나라의 남다른 교육열은 엄청난 무형자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투자가 학벌 프리미엄을 얻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명문대 졸업장과 `사`자 돌림 면허로 30년 이상 버티던 시대는 끝났다. 인공지능 시대의 코딩 교육이나 글로벌 시대의 영어 교육을 등한시하는 정부도 문제다.

국가 거버넌스는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춰야 한다. 정부가 가상화폐 투기 광풍을 막는 일과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키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건 국가 거버넌스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준다. 재산적 가치가 있고 엄청난 차익을 안겨주는 가상화폐에 양도소득세나 거래세를 물릴 수 있도록 진작 법체계를 정비해두었더라면 투기 광풍을 잠재우기가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도구가 노동자를 내려친다고 했다.
그러나 2세기 전의 가장 놀라운 혁신인 방적기는 인간의 노동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지금의 인공지능과 로봇은 노동자들에게 방적기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시대착오적인 기계파괴운동을 벌일 수는 없다. 정부는 자본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저성장과 불평등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해법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과연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는가.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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