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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칼럼] 중국이라는 용의 발톱

  • 장경덕 
  • 입력 : 2018.06.05 17:13:22   수정 :2018.06.05 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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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해 전에 중국 스마트폰시장에서 삼성에 도전한 현지 기업들은 스스로를 정부군을 공격하는 게릴라로 여겼다. 그들은 가볍고 민첩했다. 변칙에 능했고 실패의 부담이 작았다. 이미 글로벌 거인이 된 삼성은 지켜야 할 것이 많았다.
자연히 날렵한 게릴라들의 점유율이 높아졌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단순한 게릴라가 아니다.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시스템이다. 중국 당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가격 담합 여부를 조사하러 들이닥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중국은 개혁과 개방으로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용이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그 등에 업혀 쉽게 날아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용은 무시무시한 발톱을 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기술패권주의의 발톱이다. 석유보다 반도체를 더 많이 수입하는 중국은 이제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한국의 반도체 강자들을 할퀴려 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의 앞선 기술과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결합하는 분업체계를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건 이미 낡은 패러다임이 됐다. 항공우주산업이나 양자컴퓨팅을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우리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중국은 21세기의 핵심적인 기반 기술에서 미국과 패권을 다툴 정도가 됐다. 인공지능(AI) 분야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의 AI 기업은 8억명의 인터넷 사용자가 쏟아내는 데이터의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중국 기업은 이제 AI칩도 만든다. 구글 회장을 지낸 에릭 슈밋은 2025년이면 중국이 AI 기술 면에서 미국을 제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기술 발전은 비약적이다.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이 거쳐온 여러 발전단계를 단숨에 뛰어넘는 퀀텀 점프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유선전화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나라가 5세대(5G) 이동통신의 표준을 선점하려고 질주하는 식이다. 이는 단순히 후발 주자의 이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기술패권을 노리는 국가의 전략적 지원이 주효했다. 중국이 초당 9경3000조번의 연산을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 주도 기술 발전 모델을 상징한다.

서방의 경제학자들은 중국처럼 국가 통제가 심한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진정한 창조적 파괴와 포용적인 성장이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개발 초기에는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해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지만 머지않아 한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체제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국가 통제의 철권이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글 같은 자본주의 생태계가 작동한다. 선전과 같은 기술생태계는 실리콘밸리 못지않게 역동적이다. 게릴라 기업들의 산채라고 할 만한 이곳에서는 `삼싱` 휴대폰과 `구우치` 백을 비롯해 온갖 복제품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이런 체제에서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성장잠재력과 혁신능력이 폭발할 수 있다. 기술패권을 움켜쥐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불공정한 무역제한도 서슴지 않는 국가가 뒷배를 봐준다면 더욱 유리할 것이다.

기술패권주의의 발톱을 세운 중국은 우리의 주력산업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철강, 조선, 자동차를 비롯한 전통적인 주력산업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나 반도체처럼 우리의 경쟁우위가 확고한 것 같았던 분야까지 위태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 전략은 안일하다. 이미 많은 성취를 이룬 기업들은 변신에 너무 굼뜨다. 지난날의 성공 신화에 취해 진정한 창조적 파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 성공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관료조직으로는 게릴라처럼 날쌘 도전자들을 상대하기 어렵다. 개방적인 협업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대에 폐쇄적인 순혈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정부는 말로만 혁신성장을 부르짖고 있다. 중국의 혁신 생태계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으며 그들을 상대로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면 어떤 국가전략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기업과 따로 놀고 있다. 기업도 정부도 아직 중국이라는 용의 발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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