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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장경덕 칼럼

[장경덕 칼럼] 슬픈 베팅

  • 장경덕
  • 입력 : 2017.12.19 17:25:19   수정 :2017.12.19 19: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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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킨들버거가 말했다.

"부자가 되는 친구를 보는 것만큼 판단력을 흐트리는 건 없다."

비트코인 투기 광풍을 지켜본 우리는 광기와 패닉의 역사를 꿰뚫어본 이 경제학자의 촌철살인에 무릎을 친다. `지인의 지인이 비트코인을 사서 몇십억 원을 벌었다더라`는 건 그나마 먼 이야기다.
친구가 눈앞에서 손쉽게 대박을 터트리는 걸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 이는 없다. 나만 이 둘도 없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두렵고 초조해진다.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 신드롬이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상에 나왔다. 처음부터 이 가상화폐를 눈여겨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1달러로 코인 몇십 개를 살 수 있을 때 왜 잡아두지 못했을까 후회하는 건 부질없다. 하지만 한 해 전, 아니 한 달 전에만 잡았어도 좋았을걸 하고 분해하는 이는 많다. 올해 초 1000달러였던 비트코인 값은 며칠 전 2만달러까지 치솟았다. 한국 시장에서는 연초 120만원에서 이달 초 한때 2500만원까지 20배 넘게 뛰었다.

한국의 비트코인 광풍은 유별나다.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투기판에 뛰어들었다. 알바로 번 돈을 튀겨 등록금을 내려는 대학생도 있다. 생계비를 벌려는 주부, 빚을 갚아야 할 실업자도 있다. 물론 투기꾼 중에는 짜릿한 쾌감을 주는 베팅 자체를 즐기는 금수저도 있다. 하지만 큰 것 한 방으로 인생 역전을 이루려는 흙수저도 있다. 다른 기회가 모두 막혀 있다는 절망적인 생각에서 무작정 휘두르는 위험한 베팅이다.

비트코인 투기 바람이 얼마나 더 갈지는 알 수 없다. 컴퓨터 암호로 만들어진 이 가상화폐의 본질적인 가치를 누구도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업계의 전설인 줄리언 로버트슨도 "비트코인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JP모건체이스의 수장인 제이미 다이먼은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단언했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거대한 투기적 거품"으로 규정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이 가상화폐가 "투자와 도박의 중간에 있다"고 했다.

비트코인의 정체가 모호할수록 투기 대상으로서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모호성은 한 꺼풀씩 벗겨질 것이다. 비트코인을 달러나 원화를 대체하는 화폐로 쓰기에는 여러모로 부적합하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당신은 연초에 비트코인 하나로 노트북PC 한 대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무 대를 살 수 있다. 비트코인 값이 롤러코스터를 타서 가치 저장과 교환의 매개로 쓰기 어려운 것이다. 당신이 비트코인으로 주택대출을 받았다면 1년 새 빚 부담이 20배가 됐을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물가를 계산했다면 올해는 엄청난 디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멈춰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상화폐를 회계 단위로 쓰기도 어렵다.

비트코인의 공급은 2100만개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더 나은 가상화폐들이 많이 나오면 비트코인의 희소성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함부로 찍어낼 수 없어서 인플레이션 걱정이 없다.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마당에 이 가상통화가 뒤늦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뭔가. 익명성이 보장되는 비트코인은 검은돈을 거래하는 데 유리하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지구촌의 검은 거래 수요가 폭증했을 리는 없다.

결국 비트코인 값이 폭등한 까닭은 한 가지로 수렴한다. 더 많은 이들이 더 쉽게 비트코인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본질 가치를 알 수 없는 비트코인을 계속해서 사는 것은 단지 다른 이들이 더 높은 값에 사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큰 바보가 있을 것으로 믿고 투기에 뛰어드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사지 않고 버틴 이들이 더 바보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가상화폐를 들고 있는 이들이 바보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비트코인 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있었더라도 가격 하락 때 이득을 볼 수 있는 공매도나 선물거래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매수와 매도 세력들이 누가 더 똑똑한지 진검승부를 벌이게 될 것이다.
언젠가 거품이 꺼진다면 붕괴와 패닉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절망의 베팅에 나선 이들은 투기 장에 뛰어들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킨들버거는 역사의 교훈을 이렇게 요약했다.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자를 잡아먹는다."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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