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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장경덕 칼럼

[장경덕 칼럼] 중화론(中禍論)

  • 장경덕 
  • 입력 : 2017.09.19 17:32:42   수정 :2017.09.19 17: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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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몇 차례만 다녀와도 머릿속에는 많은 이미지가 남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이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2005년 서부 내륙 깊숙이 들어갔을 때였다. 개발이 한참 뒤떨어진 곳이었다.
관광지의 한 사찰 대문 앞에 붉은 승복을 입은 어린 중이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다. 2G 폰으로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입가에는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중국 같은 후발 개도국은 선진국이 걸었던 여러 발전단계를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다. 유선전화도 깔리지 않았던 오지 마을에서 갑자기 휴대폰을 쓰게 된 것처럼. 그로부터 10년 후 상하이에 들렀을 때는 모두가 4G 폰을 쓰고 있었다. 중국은 이미 한 해 4억대의 스마트폰이 팔리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20여 년 전 푸둥 개발이 한창일 때 보았던 상하이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중국이 도약할 때 한국도 날개를 달았다. 공산화 후 한 세대 동안 문을 닫아걸고 잠을 잤던 중국이라는 용이 힘차게 날아오를 때 한국 경제도 그 등에 올라타고 어렵지 않게 비상할 수 있었다. 한중 수교 후 25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소화하고 있다. 그새 한국 기업의 대중 투자 잔액은 700억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의 개방과 고속 성장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하지만 축복은 시련을 잉태하고 있었다. 한국 경제는 중국이 재채기만 해도 감기에 걸리는 체질로 바뀌었다. 중국이 사드 보복과 같은 몽니를 부릴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업들은 중국 리스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오랫동안 공들였던 중국 시장에서 짐을 싸는 롯데, 매출이 거의 반 토막이 날 정도로 고전하는 현대차, 배터리 인증에서 노골적인 차별을 겪고 동유럽으로 눈을 돌린 삼성과 LG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거인이 됐다. 그런 나라가 신사답지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늘 가슴을 졸여야 한다. 갈수록 자존감이 커지는 이 나라에서 때때로 거친 중화 민족주의가 발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우리가 앞으로 더 자주 중화(中華)가 중화(中禍)로 바뀌는 상황을 염려하게 되리라는 건 나만의 예감이 아닐 것이다.

중국은 참으로 오랫동안 하늘 아래 모든 나라를 다스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열강의 침탈을 당한 후에야 각국 간의 세력 균형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냉전시대 중국의 문호를 열어젖혔던 헨리 키신저는 미·중의 세력 균형과 협력이 21세기 세계 질서의 두 기둥이라고 했다. 러·일전쟁 후 한 세기 동안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새로운 패권국의 등장을 막는 것이었다. 중국은 가능한 한 적을 멀리 두려고 애썼다. 중국과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물론 국제질서는 힘의 균형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도덕적 정당성도 중요하다. 도덕적 측면을 무시한 채 힘겨루기만 하거나 힘을 갖추지 못한 채 도덕만 설파하는 외교는 실패한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에 대응하는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힘의 균형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사반세기 동안 핵 개발을 계속해왔지만 중국이 이를 제지하지 않은 채 자위적인 한국의 사드 배치만을 물고 늘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나 제도와 문화, 가치를 아우른 소프트파워 면에서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이 자체 제작한 첫 항공모함이 물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11척의 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있다. 중국 해군 군함의 총 t수는 40만t으로 미국(950만t)에 비교할 수도 없다. 중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11조달러로 미국의 60%에 그쳤다. 중국은 스티브 잡스를 만들지 못하고 아이폰 잡스(iPhone jobs)만 만들 수 있다. 미·중의 패권 다툼에 따른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히 중국도 필요하고 미국도 필요하다.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고 평화롭게 굴기하는 중국과, 중국이 아시아에서 이웃 나라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견제해줄 미국이 필요하다.

그런 우리는 엄청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은 영원히 아시아에 버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언제까지 아시아에 남아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엉클 샘이 아시아를 떠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천명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굴기한 중국이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늘 중국이라는 용의 위험한 발톱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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