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장경덕 칼럼

[장경덕 칼럼] '이생망'에 대하여

  • 장경덕 
  • 입력 : 2017.05.30 17:19:30   수정 :2017.05.30 17:25:52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36201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2002년 5월 마지막 날. 이 땅은 붉은 악마들로 가득했다. 여름 한 달 대한민국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월드컵 4강 신화로 온 국민의 가슴은 터질 듯했다. 함성은 하늘을 찔렀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그 사이 들어섰다 물러난 정권이 셋. 이제 막 네 번째 정권이 들어섰다. 그동안 또 한 차례 함성이 울렸다. 하지만 지난겨울 광장을 흔든 건 분노의 함성이었다. 온 국민이 얼싸안고 지르는 환희의 함성이 아니었다.

월드컵 축제가 벌어진 그해 6월 우리나라 실업률은 2.9%였다. 지난달에는 4.2%였다. 같은 기간 20대 청년들의 실업률은 6%에서 11.3%로 치솟았다. 4월 기준으로는 1999년 통계가 시작된 후 최고였다. 체감실업률은 그 두 배가 넘는다. 지금 20대는 한일 월드컵 때 기껏해야 열네 살이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붉은 악마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일자리만 얻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심정으로.

그들은 이미 많은 걸 포기했다. 미래는 두렵기만 하다. 일할 기회조차 잃은 이들은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한다. 붉은 악마는 `이생망`의 세대가 됐다. 고속 성장을 경험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아들딸들은 최악의 고용절벽에 부딪혔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위정자들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지했다. 그리고 무능했다. 지독히 운이 나빴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잘못한 건 정부만이 아니다. 학교와 기업과 가정도 낡은 사고에 갇혀 있었다. 잿더미 위에서 많은 걸 이룬 기성세대와 성공신화로 빛나는 기존의 성장모델은 이제 젊은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

이생망을 되뇌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4369만명 중 실업자는 117만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통계는 일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친다. 더 많은 시간 일하고 싶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한동안 일자리를 찾아다니지 않았지만 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이들도 많다. 이들을 합치면 일자리에 목마른 이들은 329만명으로 늘어난다. 일자리가 있어도 좌절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대기업 정규직 임금의 37%를 받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박사 학위를 갖고 단순 노무를 하는 이들도 있다.

문재인정부는 그 모든 걸 바꾸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날마다 깨닫고 있다.

이생망은 절망과 분노를 품은 언어다. 그 말에서 공동체의 위기와 체제의 위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너무나 둔감한 사람이다. 그들의 비통함을 풀어주는 일은 다소 무리가 있어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일자리 대통령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첫째, 숫자보다 사람을 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의 일자리 상황판에 나오는 숫자들은 거시적이고 추상적이다. 이생망을 되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좌절과 비통함을 드러낼 수 없다. 일자리 문제는 철저히 미시적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이 상황판 숫자를 챙기는 것보다 이생망 세대 젊은이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의미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젊은이를 붙잡고 20여 년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많은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붕어빵 인재만 찍어내는 교육의 문제, 숨 가쁜 기술 변화와 글로벌 자본의 흐름에 비해 노동시장이 유연하지도 안전하지도 못한 문제, 온갖 기득권 세력의 지대 추구로 젊은이들의 기회가 빼앗기고 있는 문제들이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몇몇 젊은이들을 조용히 청와대로 불러 이야기해보면 문 대통령은 많은 일자리 정책들이 탁상공론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맞춤형 해법도 나올 수 있다. 민간 업체가 청년 실업자를 상대로 맞춤형 교육과 지원을 통해 취업을 성사시키면 정부가 보상을 해주는 제도도 도입할 만하다.

둘째, 비통함을 풀어주는 정치가 기본적인 경제원리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의지와 타협이 중요한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무시한 일자리 해법은 오래갈 수 없다. 새 정부와 재계는 날선 신경전을 벌이기 전에 무엇이 가장 지속가능한 해법인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토론을 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 대통령이 산타클로스나 마술사나 슈퍼맨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생망의 비통함은 깜짝 선물로 풀어줄 수 없다. 값비싼 선물을 주지 않아도 이생망을 되뇌던 젊은이를 다시 붉은 악마로 만들어줄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장경덕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경덕 칼럼 더보기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똘똘한 한 채` 투자 비법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