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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칼럼] 권력은 왜 쇠퇴하는가

  • 장경덕
  • 입력 : 2017.05.02 17:22:26   수정 :2017.05.02 19:3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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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 자리에서 대통령 탄핵에 따른 리더십 공백이 화제에 올랐다. 나는 그때 참으로 냉소적인 말을 들었다. 중소기업 사장인 A가 던진 말이다.

"대통령이 없다고 나라가 안 돌아가나. 경제는 되레 더 잘되더라."

좌중은 그 역설에 맞장구를 쳤다.
너도나도 무두절(無頭節)이 왜 좋은지 이야기했다. 정부든 기업이든 시시콜콜 간섭하는 보스가 없을 때 더 잘 돌아가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요즘 수출을 보자. 대통령이 1970년대식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며 독려하지 않아도 수출은 날개를 달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사상 두 번째로 잘됐다. 물론 지금 우리 경제가 다 잘 돌아가는 건 결코 아니다. 일자리는 말라붙고 있다. 외교는 엉망이다. A는 다만 누구보다 힘센 권력자의 부재에도 나라가 이 정도로 굴러가고 있음을 상기시켰을 뿐이다.

나는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는 사실 전통적인 권력의 쇠퇴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궐위 상태인데도 보통 사람들이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국민 개개인의 역량이 커질수록 권력의 존재감은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 아닌가.

일주일 후면 우리는 새 권력을 맞는다. 누가 새 대통령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누가 그 자리에 오르든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막강한 권력을 쥐겠지만 지난날의 대통령들보다는 더 자주 권력의 쇠퇴를 절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거대 권력이 쇠퇴의 길을 걷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21세기에는 권력을 얻기도 수월해졌지만 권력을 잃기도 쉬워졌다. 미국이나 중국의 정상, 글로벌 투자은행이나 한국 재벌 총수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그들의 힘은 확실히 전임자들보다는 약하다.

오랫동안 포린폴리시 편집장을 지낸 모이세스 나임은 세 가지 혁명적인 변화 때문에 권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첫째, 양적혁명이다. 인구와 부가 급속히 늘어날수록 권력의 통제는 약화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인구는 반세기 만에 2800만명에서 5100만명으로 늘어났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많이 깨치고 더 부유해졌다. 그럴수록 그들을 지배하는 권력은 상대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

둘째, 이동혁명이다. 이제 사람과 자본은 어느 한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지구촌 어디로든 옮겨갈 수 있다. 가장 많은 표심을 얻어 대권을 거머쥔 지도자도 글로벌 자본과 냉혹한 시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셋째, 의식혁명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권위나 주류의 가치를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파워 엘리트가 대중을 설득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오늘날 정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비토크라시(vetocracy)의 특징을 갖고 있다. 온갖 대항세력들이 정부의 결정을 거부하고 지연시킬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대선 공약 입법 과정에서 잇달아 수모를 겪었다. 집권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한국의 제1당 국회 의석은 40%에 불과하다. 어느 당이 집권하든 정부는 `거부권 정치`에 가로막혀 긴급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번번이 좌절할 수 있다.

일주일 후 바로 국정을 챙겨야 할 새 대통령은 참으로 버거운 숙제들을 안고 있다. 봉숭아학당 같았던 대선 후보 경제토론을 보면 새 대통령이 과연 한껏 높아진 국민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무리한 공약들은 이행 과정에서 글로벌 자본의 논리에 가로막히고 의회 권력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외교 분야의 고차원 방정식을 일차방정식으로 풀려는 자세도 불안하다.


우리는 지구촌 어디에서든 국민의 분노와 좌절에 편승해 당선된 지도자가 집권 후 얼마나 큰 장벽에 부딪히는지 숱하게 보았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나는 정말이지 정권 출범 직후부터 국민의 기대와 신뢰가 나날이 무너지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신뢰와 포용의 리더십으로 권력의 쇠퇴를 뛰어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날마다 놀라고 싶다.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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