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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칼럼] 링컨의 세 귀

  • 장경덕 
  • 입력 : 2017.04.04 17:39:55   수정 :2017.04.04 17: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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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수어드:민주당 의원 스무 명이 노예제 폐지에 찬성표를 던진다고요? 제 생각에는….

에이브러햄 링컨:당신의 의견을 늘 듣고 있습니다.

수어드:아니면 듣는 척만 하거나.

링컨:내 세 귀를 다 열고 듣지요.

에이브러햄 링컨의 귀가 셋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링컨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런데 이 한마디는 토니 쿠슈너가 대본을 쓴 영화 `링컨`의 대사 중 내 귀에 가장 오랜 울림으로 남아 있다.
대통령이 세 귀를 열고 듣는다니. 수어드는 공화당 대선 주자로서 링컨을 앞섰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자 정적이었던 그를 국무장관에 앉혔다. 영화는 `라이벌의 팀`을 이끄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그려낸다. 말을 잘하는 링컨은 듣는 건 더 잘했다. 그래서 극 중에서 그의 귀는 셋이 됐다.

한 달 남짓 지나면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맞는다. 나는 정말이지 그의 귀가 셋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그가 두 귀만이라도 활짝 열 수 있기를 바란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안에서 싫은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측근들에 둘러싸여 지내며 저녁마다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고 마는 대통령은 더 이상 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

바로 지금 우리 모두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 정치사의 비극은 모두 지도자가 귀를 막은 데서 비롯됐다. 지도자가 일단 귀를 열기만 해도 숱한 난제를 풀어갈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적어도 지금 같은 최악의 재앙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지도자는 몇 사람으로 압축됐다. 그중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지금처럼 모든 게 가속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는 어떤 지도자도 5000만 국민의 집단지성을 능가할 수 없다. 그래서 새 대통령은 더 많이 들어야 한다. 그 5000만명이 이리 쪼개지고 저리 갈라진 시대에는 어느 지도자도 모든 이들의 열망을 채워줄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달 초 청와대에 입성할 새 대통령은 누구를 만나 무슨 이야기부터 들어야 할까. 이 문제에 관해서는 20년 전 5월 영국 총리관저에 입성했던 토니 블레어의 경험담이 도움이 될 것이다.

블레어는 훗날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 나는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노동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후 승리의 연설을 하러 단상에 올라 생각을 가다듬는 동안 그는 점점 커지던 두려움의 근원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그와 함께 싸웠던 동지와 그에게 공감했던 유권자들은 이제 모두 저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기대가 컸던 만큼 환멸도 클 것이었다.

그는 "정권을 잡기까지 여정은 결승선을 향한 가벼운 조깅 같은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진짜 어려운 건 그다음부터였다. 블레어는 그런 현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랬기에 10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다. 그는 정치가 대중과 하는 연애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지도자가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감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그 관계는 갈수록 멀어지고 결국 파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2017년 5월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누가 그 자리에 가든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감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대통령과 국민 사이는 금세 소원해지고 5년도 못 돼 파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 대통령은 당선된 그 순간부터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그리고 기를 쓰고 들어야 한다. 달콤한 말보다 쓴소리를 더 경청해야 할 것이다. 링컨이 그랬듯이 정적이었던 이를 가까이 두고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블레어가 그랬듯이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의 목소리를 모두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통합과 설득의 리더십은 빈말이 될 것이다.

새 대통령은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떤 비판도 피하려 하지 않고 누구나 스스럼없이 만나 토론할 수 있는 지도자이기를 바란다. 저녁에는 `이번 생은 망했다`고 좌절하는 청년에게도, `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공격하는 야당 정치인에게도 언제나 귀를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처음으로 세 귀를 가졌던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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