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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외인구단, 여자 아이스하키팀

  • 손현덕 
  • 입력 : 2018.02.06 17:14:16   수정 :2018.02.06 18: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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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교정을 나오면 도로 맞은편에 줄지어 있는 상점들 중에 눈길을 주는 장소가 딱 한 군데 있었다. 만화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린이들이나 드나드는 만화방을 뚫어지게 쳐다본 건 새로운 연재물이 입고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기다리던 다음 편이 나왔다는 안내문이 걸리면 만사 제치고 만화방에 들어갔다. `외인구단` 만화를 35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떠올리는 건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스토리를 접하고 나서다. 게임 규칙도 제대로 모르는 나를 단숨에 아이스하키에 빠져들게 한 우리 선수들의 이야기. 그들은 흐릿해져 가는 외인구단에 대한 나의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매 경기 슈팅을 막아내느라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는 신소정. 자신의 경기 동영상을 캐나다에 보냈고 그 이국땅 남동쪽 끝에 있는 노바스코샤의 한 대학에서 그녀의 열정을 샀다. 그리고 연봉 1500만원에 뉴욕 리베터스 팀에 입단한다.

연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수진은 2011년 일본 아이스하키 클럽으로 유학을 떠난다. 식당에서 하루에 300개씩 만두를 빚으면서 배운 아이스하키.

한국명, 박은정. 캐나다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뉴욕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대표팀 합류를 묻는 이메일을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컬럼비아 의과대학원을 입학했지만 휴학계를 냈다.

마리사 브랜트.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르고 미국인 부모에게 맡겨진 그녀는 대학 2학년 때 한국팀 코치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2016년 귀화, 입양 당시 서류에 적힌 이름은 박윤정. 생모를 찾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올림픽을 뛴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듀크대 생물대학원을 다니는 그리핀 랜드. 유니폼에 어머니의 이름 희수를 쓴 선머슴 같은 그녀는 미래 의사의 꿈을 잠시 정지시켰다.

이렇게 해서 짜여진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팀이다. 외인구단이지만 `공포`는 없다. 전문가들은 안다. 예선전 3경기 중 한 번만 이겨도 기적이라는 걸. 우리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건 메달이 아니다. 비록 전패를 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경기를 마치고 무거운 헬멧을 벗을 때 보게 될 비를 맞은 듯한 그들의 얼굴. 하루 훈련이 끝나면 흠뻑 땀에 젖은 운동복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그들이다. 스피드를 즐기고 도전을 사랑하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과정에 만족하는, 그들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이다.

이들에게 정말 외인구단이 찾아들었다. 감독과 선수들과는 전혀 사전 교감 없는 12명의 북한 선수들이다. 국가대표 대신 남북단일팀으로 나간다. 태극기 대신 한반도기를 단다. 아이스하키의 생명은 팀워크다. 그건 2016년 상영된 `국가대표2`라는 영화를 보면 안다. 족보에도 없는 선수들을 긁어모아 대표팀을 꾸린 감독은 선수들 간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굴비 엮듯 새끼줄을 몸에 두르고 훈련을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그 짧은 10일 남짓 합숙, 우리는 북한 선수들과 그렇게 호흡을 맞췄다. 회식 자리에서 등심 90인분을 먹어치우는 한국팀과 버스 타는 게 익숙지 않아 멀미를 하는 북한팀과의 간극은 엄청나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링크에 나서면 모두가 하나 되는 젊은이들의 쿨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시작 전에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고,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골을 넣으면 하이파이브를 하고, 경기가 끝나면 얼싸안는 그들을.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진천 훈련장에선 동포 귀화 선수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면서 웃음꽃을 피운 북한 선수들이다. 그들에게 무슨 정치와 이념, 체제의 꼬리표를 달겠는가. 그들에게 무슨 만경봉호가 있고 열병식이 있겠는가. 스포츠 세계에선 최선을 다하는 투지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다.


어쩌면 기적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14일 오후 4시 40분. 마지막 예선전을 일본과 치른다. 나는 이 경기 관중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진정한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그려본다. 경기를 마친 후 문 대통령이 링크로 내려와 땀으로 범벅 된 선수들을 안아주고 그들 각자에게 사인 한 장 부탁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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