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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김정은에 대해 우리가 놓친 것

  • 손현덕 
  • 입력 : 2018.09.19 00:07:01   수정 :2018.09.19 13: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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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날, 나에겐 아직도 마음 한쪽에 북한에 대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꽤 오래전 북한핵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20여 년간 이 이슈에만 매달려온 전문가 한 분의 발표를 듣고서부터였다. 이런 발언이었다.

"제가 북한에 대해 정말 미스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단시간 내에 과학기술 분야에서 급진전이 일어났을까 하는 점입니다.
" 북한 장거리미사일의 사거리가 불과 5개월 사이에 5000㎞에서 1만3000㎞로 늘어난 걸 두고 한 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사일을 발사대까지 이동시키는 차량도 첨단에 속한다. 여기에다가 북한은 북극성이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도 확보했다. 이것이 모두 김정은 시대에 한 것이다.

사거리가 5000㎞가 넘는 화성12형의 로켓엔진은 원산지는 러시아, 수입처는 우크라이나이고, 이동식 발사차량은 중국산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종합적으로 완성한 북한 과학기술의 저력을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

그러다가 그 수수께끼의 실마리가 어렴풋이 풀린 건 9·11 테러가 발생한 지 꼭 17년이 되는 날 미국에서 출간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의 `공포 : 백악관 안의 트럼프`에서였다. 책 93쪽에 미국 정보당국이 북한의 3대 지도자인 김정은을 분석한 대목이 나온다. 책에 따르면 미국은 김정은이 핵무기를 다루는 데 있어 아버지인 김정일보다 훨씬 유능하다고 판단했다는 것. 그 핵심이 실패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핵실험에 실패한 과학자들을 숙청했지만 김정은은 `실패를 성공으로 가는 불가피한 여정`으로 봤다.

아마도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이 간과한 부분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 4월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에서 그들 주장으로 첫 실용위성을 발사한다. 그게 은하 3호였다. 그 위성은 궤도 진입은 고사하고 발사 1~2분 만에 공중 폭발했다. 이 행사를 선전하기 위해 50여 명의 외신기자를 초청한 북한이었다. 사전 브리핑까지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북한은 이례적으로 실패를 시인한다. 전문가들의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외국 전문가들과 취재진이 있는데 거짓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국제사회의 제재나 압력을 피할 의도를 담고 있다. 이런 해설이었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실패를 용인하는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을 지적하진 않았다.

김정은은 시험발사에 실패한 과학기술자를 숙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과 몇 달 후 광명성 3호를 성공리에 발사하자 담당자를 벼락 출세시켰다. 그가 금수산태양궁전 개관식 때 김정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최춘식이었다.

2016년 8월 SLBM 시험발사가 성공하자 김정은은 소위 `맞담배` 세리머니를 벌인다. 같이 담배를 문 사람은 김정식 당 군수공업부 부부장이었다. 그 다음해에는 `어부바` 세리머니도 있었다. 고출력 로켓엔진 지상분출시험을 참관한 뒤 과학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직접 등에 업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게 다 `쇼`라고 할지 모르겠다. 모두 핵무기 같은 군사기술에 연관됐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이런 행보는 생물기술 정보통신 분야로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평양 시내에 과학자 거리를 만들어 그들에게 아파트까지 공짜로 준다.

김정은의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것 하나. 과학기술에서 실패를 용인하고 과학자를 우대하는 자세.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엔 그게 없다. 정부도 기업도.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연구개발(R&D) 투자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는 나라. 사후에 책임이 두려워 안전한 곳에만 투자하는 기업문화. 그런 환경에선 파괴적 기술의 탄생은 나오지 않는다.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항서 축구감독이 올해 초 중국 창저우에서 열린 AFC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연장 접전 끝에 1대2로 분패하자 이를 슬퍼하는 선수들에게 한 발언이 화제다. 현지 고등학교 논술시험에까지 등장했다.
"고개 숙이지 말라. 최선을 다했는데 왜 풀이 죽어 있나. 너희는 충분히 준우승을 누릴 자격이 있다."

준우승을 실패로 바꾼다. 과학기술에서 성공은 우승이고 실패는 준우승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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