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매케인의 이병철 강연

  • 손현덕 
  • 입력 : 2018.08.28 17:15:15   수정 :2018.08.28 18:33:06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54119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그는 곧 죽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저주가 아니라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난 5월 믿기지 않는 한 외신 뉴스에 경악했다. 백악관의 켈리 새들러 보좌관이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어차피 그는 죽어가고 있다"고 조롱했다.
설마 했으나 팩트였다. 매케인이 지나 해스펠 CIA 국장 지명자의 고문 이력을 문제 삼은 데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었을 텐데 지금은 백악관을 떠난 그 보좌관의 심정이 어쩔지 궁금하다. 보좌관의 예언(?)처럼 얼마 안 가 매케인은 세상을 떠났다. 불편한 진실을 거침없이 내뱉은 용기 있는 거목. 적이라도 옳은 일에는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 애국자. 미국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큰 정치인을 잃었다.

31세 해군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전투기가 격추돼 한쪽 다리와 두 팔이 모두 부러졌는데도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행운이었을까? 그는 그곳 포로수용소에서 5년간을 갇혀 지내면서 온갖 말 못할 고문을 당한다. 그런 그가 어쩌면 그렇게도 쾌활하고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사는지, 나에게 그건 일종의 미스터리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해 "우리가 그리고 인류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를 위협한다"고 쓴소리를 하고 러시아의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침공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침묵한 데 대해선 저자세 외교라고 맹공을 퍼부은 타고난 싸움꾼이고 이단아였다.

그래도 트럼프는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작은 선물을 줬다. 지난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국방수권법(NDAA·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예산 관련 15개 법안 중 유일하게 별도의 승인이 필요한 핵심 법안이다. 거기에 매케인의 이름을 달았다. 그리고 이 법안 932조. 국방부는 연간 1000만달러를 투입해 "매케인 전략 방어 펠로 프로그램"을 신설토록 했다. 마음 내키진 않았을 테지만 트럼프는 그 매케인법에 친필 사인을 했다.

그가 남긴 회고집의 제목 "쉼 없는 파도(The Restless Wave)"처럼 눈을 감기 직전까지 드라마틱한 생을 산 매케인은 대선 캠페인 때 "굴복 없음(No Surrender)"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매케인다웠다. 그는 트럼프가 오바마케어를 뒤집으려 하자 수술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도 상원에 출석해 반대표를 던졌다. 그에겐 심장이 뜨거운 협상은 있을지라도 트럼프 같은 계산적 거래는 없다. 그에겐 인기 없는 연설은 있을지라도 주도면밀한 정치적 기교는 없다.

국방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외교안보에 대한 지식은 물론 통찰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지난 5월 한국 방문이 취소된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며칠 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시간을 쪼개 그와 30분간 면담을 가지긴 했으나 매케인이 만약 한국에 왔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육성을 듣게 됐을 것이다.

그는 한국에 애정이 깊다. 6·25전쟁 후 빈곤에서 탈출한 한국의 괄목할 경제발전을 치켜세우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킨 국가의 품격을 높이 산다. 그래서 공식석상에서는 남한(South Korea)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 그가 2016년 9월 9일 "미국과 아시아와의 관계"란 주제로 헤리티지재단이 주관한 자리에서 연설을 했다. 그게 이병철 강연이다. 이 회장은 맥아더 사진 가운데 가장 멋진 것을 골라 동상을 제작해 미망인에게 전달할 정도로 한미동맹을 소중히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삼성은 창업자의 뜻을 기려 헤리티지재단에 특별 강연을 위한 기부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1995년 헨리 키신저가 스타트를 끊었다. 2년 전 이 강연 초청연사였던 매케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을 경고하면서 미국의 역사적 소임을 강조했다.

강연이 끝나자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질문이었다.

답변을 하기 전 그는 청중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서 "그걸 모르고 질문하느냐"고 되물었다.
청중들이 당황한 빛을 보이자 아주 짧게 답했다. "한미동맹 강화"라고. 그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균열을 시도하며 그 틈을 통해 비밀리에 핵위력을 강화한다는 게임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2년 전 그의 답변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매케인 같은 사람이 떠난 지금은 훨씬 더 절실하다.

[손현덕 논설실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손현덕 칼럼 더보기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Gold 투자 할 때인가?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