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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몰리에르의 변종(變種)

  • 손현덕 
  • 입력 : 2018.07.24 17:41:31   수정 :2018.07.24 17: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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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에르는 희극(戱劇)이 인간을 교화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17세기 프랑스의 희곡 작가이자 배우였던 그는 이성적 담론을 사양했다. 몰리에르에겐 아무리 논리정연하다 한들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언어는 무의미하고 허무했다.

1664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초연한 `타르튀프`란 작품에서 그는 지배층의 행태를 익살스럽게 풍자했다.
종교라는 거룩한 가면을 쓴 협잡꾼, 위선과 오만으로 가득 찬 권력자를 조롱했다. "악덕과 비행이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도록 드러내 놓을 때 그 행위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변론했다. 그래서 그의 연극은 보는 자에겐 희극이지만 생각하는 자들에겐 비극이 된다. 그러나 그 조롱이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현실 세계로 넘어올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난폭운전이 되고 그 폐해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된다. 정치판이 그렇다. 지난주 침몰 직전에 있는 자유한국당의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병준 교수가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치 언어`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 건 신선했다. 그가 히딩크 축구 감독을 예로 들며 말한 `언어`는 축구에서의 작전 개념처럼 정치 세계에서는 가치나 이념 개념이었으나 평소부터 마음에 품었던 한국당의 저품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정치적 적군에게는 조롱과 비아냥이 직격탄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건 어디까지나 몰리에르적(的) 모르핀임을 그는 직시했다. 매일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반짝 효과를 볼지 모르나 오랜 시간을 두고 벌이는 전쟁에서는 승리의 밑거름이 되지 못한다.

조롱은 증폭의 언어다. 상대방의 조롱에 대항하는 방법은 상대방에 대한 조롱으로 되받아치는 게 유일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 설명은 방어벽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조롱은 조롱을 낳고 조롱의 주고받기가 거듭되면 증오만 남는다.

조롱의 언어들이 한국당의 몰락을 재촉했고 정치에 대한 국민 혐오를 불러왔다는 분석은 타당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되는 것 아니냐며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고 전 국민을 조소했다. 비록 노선은 다르지만 친박계 인사들을 향해 `한 줌도 안된다`고 비아냥대면서 틈만 있으면 연탄가스처럼 비집고 올라와 당을 흔든다고 했다. 그는 `쓴소리`라고 했지만 품격을 잃으면 듣는 상대방은 쓰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조롱당했다고 느낀다.

우리나라 지식인, 특히 그 정점에 있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격조 높은 언어가 사라졌다. 품격의 언어를 구사하겠다는 열정은 실종됐다. 정치인의 명연설을 접한 지 참 오래다. 야비한 언어와 욕설에 가까운 말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게 오히려 선명성을 높인다고 착각한다. 그건 풍자와 조롱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저주의 언어들이다. 몰리에르의 변종이다.

저급한 정치판 언어들이 흘러넘쳐 일반인들에게까지 깊숙이 스며들었다. 대부분은 이념적 편향성에 의해 작성되는 `댓글`은 난장(亂場)으로 변했다. 표현의 자유란 미명으로 보호받으나 이미 민주주의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국민들의 정신까지 황폐화시키고 있다.

성 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똥꼬충`으로, 청년임대주택을 반대하는 노인들을 위선적인 `틀딱(틀니+딱딱)충`이란 저질적 언어로 매도한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문 대통령 찍은 주민들은 정전으로 고통 받아도 싸다" 식으로 비아냥대고 제주 난민들을 조롱의 재료로 삼는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인신 모욕적 공격은 갈등만 증폭시키고, 건전한 토론을 방해한다.

최근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 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의 시위 현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제기(재기)하십시오"라는 외침과 함께 `곰`이라는 글자로 얼굴을 가린 여성의 퍼포먼스도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안다. 그들은 남성을 조롱하는 일종의 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공격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건 뒤틀린 페미니즘에 다름 아니다. 급기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사망을 조롱하는 수준 이하의 언어들이 난무한다.


휴가철이다. 이맘때면 모든 언론이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조롱과 증오로 가득 찬 언어들을 정화시킬 양서 한 권쯤 여행 가방 안에 넣어 가길 권한다. 나도 한 권 골라 놓았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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