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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비스킷과 햄버거

  • 손현덕 
  • 입력 : 2018.05.29 17:34:51   수정 :2018.05.29 17: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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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흘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슬리 사무총장을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북한이 자신에게 평양이 아닌 시골까지 보여줬다는 데 놀랐고, 또 거기서 소들이 쟁기를 끄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현장요원 2명을 데리고 북한의 식량 사정을 체크한 결과 비슬리 총장이 내린 결론은 북한 주민들이 기근 상황까지는 안 가도 영양결핍 문제는 심각하다는 것. WFP가 북한을 주목한 건 1994년 대기근 이후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3년간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WFP에 따르면 현재 북한 주민 10명 중 4명은 영양부족 상태다. WFP가 20년 전인 1999년 북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착수한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그게 `비스킷`이다. 현재 북한에서 가동 중인 11개 영양과자 공장 중 절반이 넘는 6개가 비스킷 공장이다. 신의주, 청진, 혜산, 문촌, 평성, 해주에 위치해 있다. 북한 정부가 용지와 인력을 공급하고 WFP가 설비와 재료를 들여와 비스킷을 생산하고 있다. 비스킷 표면에는 WFP란 마크가 선명하다.

비스킷은 `북한 경제 잃어버린 70년`의 상징물이다. 1950년대 김일성 주석이 전 인민에게 장담한 `이밥(쌀밥)에 고깃국`이 실패했음을 입증한다. 북한이 개방경제, 시장경제를 부분적이나마 채택했다면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 만든 비스킷을 영양보조 식품이라고 어린이들에게 나눠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비스킷을 받아먹기 위해 북한 어린이들은 길게 줄을 선다. 북한과 WFP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간식용으론 보존성이 뛰어난 비스킷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하나 결코 식사 대용은 될 수 없다.

비스킷이 폐쇄경제의 상징물이라면 개방경제의 상징은 아마도 햄버거일 것이다. 더욱이 햄버거는 간식용이 아니라 식사 대용이다. 북한에 햄버거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대통령 선거에 나선 재작년 6월 애틀랜타 유세 때였다. 그는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한다면 나는 그를 적극적으로 환영할 것"이라면서 "회담장에서 햄버거를 대접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연설을 문맥적으로 따져 보면 "정식 만찬은 무슨, 햄버거나 먹지"라는 투의 비아냥이었지만 그는 북한 경제의 폐쇄성을 깰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햄버거임을 간파한 듯하다.

김 위원장도 어쩌면 햄버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보를 맡고 있는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처음으로 운을 뗐다. 지난 4월 26일 열린 남북정상회담 3차 특별토론회에서였다. 문 특보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체제보장을 언급하면서 "맥도날드가 평양에서 가게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북한의 생각인 것 같은 뉘앙스였다. 문재인정부의 최고위 안보책임자 역시 사견임을 전제로 "북한은 평화협정문 같은 종이 한 장만으로 안심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트럼프타워나 맥도날드 매장 같은 손에 잡히는 걸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미국, 북한,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 모두가 비핵화에 매달려 있는데 무슨 한가한 햄버거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 핵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건 군사적 위협이나 경제제재가 아닌 오히려 맥도날드 가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미제 청바지가 구(舊)소련의 견고한 공산주의 체제를 깬 것처럼.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이 그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말했지만 북한에도 맥도날드가 진출하면 어쩌면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인 미국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이 오락가락이다. 보름 남짓한 기간에 또 무슨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렇다고 북한 핵 문제가, 한반도 평화 이슈가 멈춰 설 수는 없다. 대타협이든, 파국이든 우리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설사 시간이 걸리더라도 파멸보다는 공존의 길로 가야 한다.

모두가 무지개를 좇을 때 누군가는 낭떠러지를 살펴야 한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그렇다. 그 역도 성립한다. 모두가 낭떠러지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에도 누군가는 무지개를 쳐다보고 있어야 한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이 그렇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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