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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비츠로셀 화재, 그 후 1년

  • 손현덕 
  • 입력 : 2018.04.17 17:20:57   수정 :2018.04.17 17: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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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주기 추모식이 있은 뒤 채 일주일이 안 된 지난해 4월 21일 밤 10시 30분. 장승국 비츠로셀 대표 휴대폰에 문자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그날 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좀 일찍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단 한 줄, `공장 화재`. 공장 책임자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사무동에서 불이 나서 생산시설까지 번지고 있다는 보고였다.
장 대표 머릿속에 갑자기 세월호 침몰이 오버랩됐다. 옷을 제대로 입을 수조차 없었다. 바지에 발이 들어가지 않아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서울 신대방동에서 차를 몰아 충남 예산 공장까지 쏜살같이 달려갔다.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차는 1시간30분 만에 도착했다.

공장에는 이미 소방차가 와 있었다. 그러나 진화 작업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비츠로셀은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다. 리튬 1차전지 생산업체 중 국내 1위이면서 세계 3위의 탄탄한 중소기업이었다. 배터리는 그 자체가 폭탄이나 다름없다. 인화성이 강한 원·부자재에 불이 붙으면 불길을 잡을 재간이 없다. 장 대표와 직원들, 소방관 모두 공장이 시뻘겋게 불타는 걸 지켜봐야 했다. 마치 가라앉는 세월호 속에 갇힌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다음날 새벽 5시 30분까지 그렇게 공장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생산설비가 다 녹아 엿가락처럼 변했다.

공장으로 내려가는 차 안. 장 대표는 만감이 교차했다. 배터리 분야에서 바닥을 기고 있던 회사를 세계 3위로 끌어올리기까지 불철주야 뛴 지난 1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막 2위 이스라엘 회사를 앞지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를 때 터진 사고였다. 모든 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정신을 차린 건 그때였다. 그는 간부들에게 전화를 했다. 첫 지시를 내렸다. "사람을 살려라. 한 명도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라. 확인하고 또 확인하라." 비츠로셀엔 약 400명의 임직원이 있다. 임직원과 가족 모두에게 몇 번씩이나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악몽 같던 주말을 보낸 후 맞은 첫 월요일. 그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먼저 불안에 떠는 전 직원을 소집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돌아온다. 기술이 있고, 고객이 있고, 신뢰가 있고 돈이 있고 사람이 있다. 자신 없는 사람은 회사를 떠나도 좋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을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비록 화재 진압의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복구의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겠다. 비록 불이 날 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복구의 순간에는 내가 앞장서겠다."

장 대표는 단 한 명도 정리해고하지 않았다. 당장 일이 없는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통상임금 100%를 주면서 4개월까지 유급휴가를 보냈다. 그는 사람의 손끝에서 제품의 품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고급 인력들을 빼내 가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대기업이 있음을 알았다.

두 번째, 전 세계 200여 개 고객사에 편지를 보냈다. 필요한 경우 콘퍼런스 콜을 했다. "6개월, 길어야 9개월 정도면 공장이 재가동된다. 1년이면 새로운 공장이 지어진다. 우리는 약속을 지킬 것이다. 당장은 다른 회사 제품을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결국 비츠로셀은 주요 고객 모두를 지켰다.

마지막 세 번째, 공장과 좀 떨어진 건물 하나가 불타지 않았다. 직원들 복지를 위해 피트니스센터·카페·도서관 용도로 활용하던 건물이었다. 그걸 `워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복구 작업은 시작됐다. 예산에서 멀리 떨어진 오송, 평택 등지에 공장을 구해 셋방살이를 했다. 직원 모두가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서고 한 시간 늦게 귀가하는 불편을 감수했다. 화재로 주식거래가 정지되는 아픔까지 겪었지만 재기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마침내 비츠로셀에 기적이 찾아왔다. 오는 20일. 화재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 비츠로셀은 그 악몽을 잊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준공식을 연다. 16개 동 규모로 공장 크기를 늘리고 다시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비도 개량하고 공장 사이 간격도 넓혔다.
스마트캠퍼스로 업그레이드했다.

고통과 난관에서 자유로운 기업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거기서 지혜를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업은 드물다. 대한민국에 비츠로셀 같은 중소기업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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