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

  • 구독신청
검색전체보기
 

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퀸, 이방카

  • 손현덕 
  • 입력 : 2018.02.20 17:29:58   수정 :2018.02.20 17:37:22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11772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동양에 장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체스가 있다. 게임규칙은 다르나 원리는 비슷하다. 각기 정해진 룰에 따라 말을 움직여 상대편 왕(킹)을 잡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장기에서 가장 성능 좋은 말은 차(車)다.
전후좌우로 움직이면서 상대방 말을 잡아먹는다. 체스에서는 퀸(Queen)이다. 기동성이 더 뛰어나다. 전후좌우에 한술 더 떠 대각선으로도 칸 수 제한 없이 움직인다. 자유자재로 체스판을 돌아다니면서 킹을 보호하기도 하고 킹의 특급 전투요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 미국의 퀸이 25일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다. 16세 때 `세븐틴`이라는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그 후 여러 차례 패션쇼 런웨이에 참석했던 모델. 21세의 나이에 남자친구(존슨앤드존슨의 후계자)가 제작한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신발과 보석, 핸드백 등을 파는 비즈니스 우먼. 여성과 일을 주제로 한 두 권의 책을 쓴 저술가. 남편의 종교인 유대교로 개종하고 아이 셋을 나은 주부. 이방카 트럼프다.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이유 하나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방카. 타고난 미모와 빼어난 사업 수완으로 미국인들의 사랑과 부러움을 받았던 그녀.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중들로부터는 감시의 눈길이 쏟아지고 그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로부터는 견제의 시선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암투가 전개되는 정치세계에서 그녀는 생존 기술을 닦기 시작한다. 권력의 크기가 대통령과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정치의 대원칙에 따르면 이방카는 부인할 수 없는 미국의 2인자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 힘든 현재의 백악관 구조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는 참모. 아버지의 구질구질한 대소사를 조용하게 처리하는 집사. 그녀의 공식 직함은 백악관 고문이지만 권력서열은 직급과는 상관이 없다.

이방카의 집무실은 웨스트윙 대통령 방 바로 위층이다. 온통 하얀색 벽에 둘러싸여 잡동사니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 눈부신 드레스를 입고 블랙타이 정장을 한 남편과 취임식 때 찍은 춤추는 사진이 걸려 있다. 거기에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마디 적었다. "이 세상 최고이자 가장 아름다운 커플. 나는 너희 둘이 정말 자랑스럽다. 사랑하는 아버지가"라고. 트럼프 백악관의 비밀을 폭로한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나온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방카는 대통령과의 거리를 이용해 그녀의 라이벌을 제거하기도 했다.

영부인 멜라니아가 뉴욕에서 대중의 눈을 피해 있는 동안, 그녀는 아버지 곁에 붙어 있었다. 멜라니아가 정상회담 같은 공식 행사에만 얼굴을 비출 때 이방카는 대통령 뒤에서 국정을 보좌했다.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퀸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100이면 100명 다 멜라니아가 아닌 이방카라고 답할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로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해고하려 했을 때 이를 극력 반대한 인물도 이방카였고, 인종주의를 확산시켰던 샬러츠빌 백인우월주의자의 강경 발언 때 `네오나치`를 비판하라고 건의한 인물도 이방카였다.

북한 핵을 놓고, 또 미국의 무차별한 통상압력을 놓고 미국과 체스를 둔다면 우리가 활용해야 할 핵심 말, 즉 퀸은 이방카일 수 있다. 비록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지금까지 백악관에서 해왔던 것처럼 킹을 보좌하고, 킹의 특급 전투요원이 될 수 있다. 굳이 북한에 비유하자면 개막식 때 한국을 찾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이고. 이방카는 김여정에 해당된다.

이방카는 평창올림픽 참석으로 그녀의 보폭을 한반도 문제에까지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녀의 공식적 업무는 여성 기업인 육성이지만 비공식적으론 퀸처럼 자유롭게 움직인다. 작년 국무부가 북한이 최악의 인신매매국이라고 발표했을 때도 한마디 거들었다. 격랑의 한반도, 소용돌이치는 무역전쟁이란 체스판에서 한국은 복잡한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이방카`란 카드를 확보했다. 그 카드를 활용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사족일지 모르나 중요한 사실 하나. 이방카의 친모인 이바나는 체코 스키선수였다. 1972년 삿포로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캐나다에 머물다 1977년 트럼프와 결혼했고 4년이 지나 이방카를 낳았다. 이방카의 한국 방문은 결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손현덕 논설실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손현덕 칼럼 더보기

오피니언 목록

박재현의 경제노트 더보기

박재현의 경제노트 썸네일사회 초년생 1억 만들기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