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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충우 딸 인서에게

  • 손현덕 
  • 입력 : 2017.12.26 17:21:59   수정 :2017.12.26 19: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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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병상에 걸려 있는 인서의 손편지.
인서는 아저씨를 모를 거야. 엊그제였지. 크리스마스에 아빠 병문안을 갔었는데 인서는 안 보이더구나. 봤으면 아저씨랑 인사를 했을 텐데.

아저씨는 인서가 많이 울었다는 말을 들었어. 아빠가 누워 있는 병상 옆에 예쁘게 손편지를 써놓았더구나. 사랑하는 아빠에게. 많이 아프냐고? 내가 걱정 많이 했다고. 아저씨는 인서가 쓴 편지를 보고 코끝이 찡해졌단다.

벌써 2주일이 지났구나. 아빠가 중국에서 정상회담 취재 중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아저씨는 갑자기 심장이 뛰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단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다소나마 걱정을 덜어주려고 그랬었지. 첫마디가 "그만하길 다행이네요"였단다.
오히려 화를 냈으면 아저씨 마음이 편했을 거야. 부기가 빠지길 1주일을 기다리고, 3시간 넘게 긴 수술을 했는데도 엄마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단다. 할머니가 그렇게 피가 많이 묻은 아빠 옷은 처음 봤단다. 빨래하는 할머니 손이 얼마나 떨렸을까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큰 덩어리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단다. 그래 인서야, 정말 그날의 일은 아저씨에게는 악몽이었고, 지금도 악몽이란다. 비록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 곁에서 같이 아픔을 나누진 못했지만 아저씨는 물론 아빠랑 같이 근무하는 직장 동료들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어. 인서처럼 우리도 울고, 우리도 걱정했단다. 그리고 인서가 느끼지 못한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건 아빠를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었단다.

인서는 잘 알지. 아저씨도 아빠가 요리를 좋아하는 걸 안단다. 언젠가 "넌 참 특출난 재주가 있는데 그걸로 방송해 보면 어떻겠니"라고 권유한 적도 있단다. 문안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아빠는 이제 더 이상 요리를 못할지도 모른단다. 수술을 하면서 후각과 미각을 거의 다 잃어버렸다더라. 아저씨는 숨이 턱 막혔단다.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단다. 가끔 세상은 사람을 부러뜨리지만 어떤 사람은 그 부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고. 아빠는 분명 그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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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야. 아저씨는 인서가 아빠에 대해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줬으면 해. 그건 아빠가 참 용감한 사람이라는 사실이야. 만약 아저씨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쳤을 거야.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던 거야. 그건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거든. 나중에 인서가 좀 더 커서, 세상을 좀 더 살아 보면 알게 될 거야. 자유나 권리 같은 것은 싸워서 얻어낸 사람만이 누릴 자격이 있거든. 아빠는 그래서 나섰던 거야. 편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법이거든. 아빠는 비겁함과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했을 사람이야. 인서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아빠를 뒀어.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 최고"라고 말해줘.

그런데 아저씨는 한 가지 걱정이 있단다. 그건 아마도 인서가 지금보다 키가 몇 뼘은 더 컸을 때 일일 것 같아. 그 걱정이란 건 인서가 가질지 모르는 세상에 대한 증오심이야. 아저씨도 알아.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 쉽지 않을 거야.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 깊숙이 증오 한 가지쯤은 숨기고 있지. 그런데 그 증오심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수록 병이 된단다. 증오심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지. 남을 증오하면,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증오하면 그가 미운 게 아니라, 그 세상이 미운 게 아니라 결국은 자신이 미워지게 된단다. 그런 마음을 이상하게 분출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아. 폭력으로 화풀이를 하거나 사랑과 동정을 약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조롱하는 사람도 있단다. 누구는 드러내 놓고, 또 누구는 뒤에 숨어서 악담을 퍼붓기도 한단다. 그런 사람들은 증오심을 마음 한가득 품고 사는 참 불쌍한 사람들이야.

인서는 지금 아저씨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거야. 이 글을 이해하려면 학교도 더 다니고 공부도 좀 더 해야 될 거야. 그러려면 4~5년은 기다려야겠네. 그때는 인서가 환하고 맑은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아빠도 그런 얼굴을 가졌거든.

오늘은 날씨가 꽤 춥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 감기 조심하고 아빠 엄마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줘. 아빠 병상에 걸린 편지에 쓴 것처럼.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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