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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손현덕 칼럼

[손현덕 칼럼] 흐루쇼프에게 보낸 재키의 편지

  • 손현덕 
  • 입력 : 2017.09.12 17:19:43   수정 :2017.09.12 17: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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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총격으로 암살당한 지 열흘째인 1963년 12월 1일. 장례식을 마친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재키)가 감사의 편지 한 장을 쓴다. 전 소련 총리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편지는 잔잔한 톤으로 시작한다.

"제가 백악관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밤들 중 하루인 오늘에야, 제가 백악관에서 쓸 수 있는 마지막 편지들 중 하나를 총리께 보냅니다."

흐루쇼프는 케네디 장례식에 부총리인 아나스타스 미코얀을 대신 보냈다.
재키는 장례식장에서 미코얀이 보여준 상기된 표정에서 남편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끔찍한 날을 지내고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재키는 펜을 들었다. 굳이 약간의 역사적 배경 설명을 하자면 당시 미국과 소련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카스트로가 공산주의 혁명으로 쿠바를 장악했을 때 케네디는 이른바 피그스만 사건이라고 불리는 쿠바 침공계획을 허락했다. 이 작전이 무참하게 실패로 끝나면서 미소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결국 소련이 쿠바에 장거리 공격용 미사일 기지 건설을 시도하게 된다. 세계는 대규모 핵전쟁에 다가서고 있었다.

재키는 당시 빅2의 지도자인 케네디와 흐루쇼프를 `빅맨(Big Man)`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녀는 "빅맨은 자기 절제나 통제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리틀맨(Little Man)은 두려움과 자만심에 의해서 움직인다"며 "당신과 그는 상대편이었는데도 전 세계의 공멸을 막기 위해 연합했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상대방을 다룰 수 있었다"고 편지에 썼다.

재키는 남편이 "전쟁이 터지면 산 자는 죽은 자를 부러워하게 될 것"이라는 흐루쇼프의 연설문을 인용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전쟁에 나서기 전에 빅맨들이 리틀맨들을 주저앉혀 대화할 수 있게 만든다면 미래는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말했다.

결국 전쟁은 없었다. 이를 두고 평화를 지킨 케네디의 위대한 승리이니, 아니면 비굴하게 타협한 케네디의 처절한 패배이니 하는 역사 논쟁이 있긴 하나 케네디는 전쟁을 막은 용기 있는 지도자로 교과서에 남는다.

재키의 편지를 끄집어낸 건 지금 한반도 상황이 1960년대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와 비슷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의 저명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케네디의 복사판처럼 조망한다. 당시 쿠바 뒤에는 소련이 있었고, 지금 북한 뒤에는 중국이 있다는 시각에서 `평행선 이론`을 제기한다.

작금의 한반도 주변을 둘러보면 빅맨이 아니라 스트롱맨이 판을 친다. 이성과 절제보다는 감정과 완력에 의존하는 듯한 지도자들이다. 속내를 종잡기 어려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절대 권력자로 등극하려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그 틈바구니에서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그리고 극동지역에 발을 담그려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냉정히 말해 그들은 북한 김정은의 광기를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익으로 치환(置換)할지에 몰두하는 리틀맨에 가깝지, 한반도에 결단코 전쟁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인류사적 신념을 지닌 빅맨들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전쟁을 반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상황은 1960년대보다 훨씬 안 좋다. 6·25전쟁 때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딘 애치슨의 표현대로 케네디는 흐루쇼프의 숨통을 조일 손잡이 나사가 있었지만 지금 트럼프에겐 시진핑과 푸틴을 코너로 밀어붙일 만한 결정적 수단이 없다. 그리고 그들 역시 김정은의 도발을 억지할 의도와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스스로가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자신을 지킬 힘과 의지가 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게 스트롱맨들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니얼 퍼거슨 말대로 우리 스스로가 벼랑 끝까지 갈 결연한 자세를 보여야만 북한의 도발이란 현재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으며, 케네디가 터키에 배치된 미국의 주피터 핵미사일을 철수한 비밀협약 같은 미래의 위험도 막을 수 있다. 우리가 밀리고, 약점을 보이는 순간 스트롱맨들의 자만심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우리의 절제와 평화 의지는 바람처럼 흩어질 것이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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