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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윤경호

[매경포럼] 美 수정헌법에서 배우자

  • 윤경호
  • 입력 : 2018.01.03 17:19:09   수정 :2018.01.03 19: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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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얘기하면 20년 주기론이 따라다녔던 때가 있다. 권력구조를 바꾸는 게 개헌의 전부인 듯 다뤄졌던 시절이다.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전제 아래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려면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는 해를 분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20년 주기론이다. 1992년 3월 총선, 12월 대선을 치렀으니 다시 20년 지나 둘을 같이 치르는 2012년 전에 개헌을 꼭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권력구조만을 고치는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목소리도 그래서 한때 힘을 얻었지만 이젠 지나간 옛이야기다. 헌법은 법치국가에서 지고의 가치를 지닌 모법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철학과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우리는 1987년을 마지막으로 여태껏 손 한번 대지 못한 채 왔다. 언론사마다 실시한 새해 여론조사를 보면 올해 꼭 개헌을 하자는 국민 의견이 60%를 넘었다. 국민 참여 직접민주주의를 더 확대하기 위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서, 시대에 맞는 기본권 개념을 명문화하기 위해서 등 여러 이유다. 이 모두를 합치면 딱 한 가지로 요약된다. 지난 30년간 변화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치러진 대선 이후 여야 정당이나 국민 상당수가 개헌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 작년 가동됐던 국회 헌법개정특위는 올 6월 말까지 활동을 연장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그동안 마련한 개헌안을 국회에서 발의하기 어려워지자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대통령 발의를 불사하겠다고 압박한다. 6월 지방선거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함께 부치느냐를 놓고 여야 간에 득실을 저울질하며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자유한국당 주장대로 6월 동시투표를 못하고 연말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따로 하더라도 연내엔 마무리하자는 것이니 올해엔 우리 헌법이 새 옷을 입을 수 있을 듯하다.

1948년 제헌 때부터 1987년 6공화국까지 9번 개정한 뒤 헌법은 좀처럼 손댈 수 없는 성역에 갇혀 있었다. 성역에 가둔 것이 정치인들의 계략이었는지 국민의 뜻이었는지 가려내기는 어렵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성역에 계속 가둬둘 것이냐다. 나라마다 개정 절차와 요건을 달리하지만 성문헌법의 모델인 미국이 헌법을 고쳐온 과정을 대입해 보면 갈 방향과 답을 얻는다.

미국 헌법은 1788년 최초 제정 후 27번 수정했다. 수정헌법 제1조에서 제27조까지로 각각 부른다. 수정헌법 제1조부터 제10조까지는 발효 후 1789~1791년 각 주의 비준을 거치며 추가된 것으로 미국 권리장전으로 불린다. 이후 헌법 개정은 필요하면 그때그때 발의되고 처리됐다. 수정헌법 제13조는 1865년 노예제 폐지다. 수정헌법 제15조는 1870년 흑인 참정권 규정이다. 수정헌법 제19조는 1920년 여성 참정권 규정이다. 수정헌법 제18조는 1919년 금주법 제정이었는데 1933년 수정헌법 제21조에서 제18조의 폐지를 규정해 사라졌다. 수정헌법 제22조는 1951년 대통령의 연임을 2기로 제한한 규정이다.

1960년대 들어서는 1961년, 1964년, 1967년 등 세 차례 수정헌법을 채택했다. 이후에는 1971년 18세 이상 선거권을 부여한 수정헌법 제26조와 1992년 상하원의 보수 변경을 허용한 수정헌법 제27조가 마지막이었다. 제27조는 1789년 상정된 12개 조항 중 그때 비준되지 못한 2개 가운데 하나로 200여 년 만에 처리됐다. 나머지 한 조항은 지금도 계류돼 있다. 10년마다 인구조사를 실시해 하원의원 정수를 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미국에서는 헌법 제정 후 1만건 이상의 수정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개별 상임위 심의에서 대부분 기각되거나 전체 주의 4분의 3을 웃돌아야 하는 주의회 비준 벽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최종 비준 청구까지 간 발의안은 33건이고 이 중 27건만 통과된 것이다. 4건의 수정안은 지금도 계류돼 있으니 헌법 개정 작업은 언제나 열려 있는 셈이다.

우리 헌법을 이번에 고칠 거면 전문부터 부칙까지 다 손보자고 욕심을 부리는 이들이 많다.
조항마다 표현마다 백가쟁명이 이어진다. 과거에도 그랬다. 간격을 좁히지 못하면 뒤로 미뤄버렸다. 그러다 성역 속에 가뒀다. 이번엔 그런 우를 범하지 말자. 이번에 물꼬를 터놓은 뒤 미국처럼 필요하면 그때그때 바로 고치자.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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