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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매경포럼 윤경호

[매경포럼] 119를 위하여

  • 윤경호 
  • 입력 : 2017.04.19 17:42:44   수정 :2017.04.19 17: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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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상 치료 전문의가 쓴 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가 전한 특별한 환자 얘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북한산에서 내려오다 벼락을 맞은 여성이 세 명의 구급대원 손에 들려 왔다. 산길이었으니 카트를 쓸 수 없어 환자를 둘러메고 폭우를 뚫고 옮겼다.
구급차에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그러나 병원에 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의사의 사망 진단에 구급대원들은 응급실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자신들의 노력으로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한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패배자 같은 모습으로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종합병원 응급실에 나타났던 119 구급대원을 이렇게 절절하게 묘사한 글을 이전까진 보지 못했다. 이후부터 나는 119 구급대원을 존경심 가득 채워 쳐다본다.

미국 9·11테러 때 죽음을 무릅쓰고 무너져 내릴 월드트레이드센터로 뛰어 들어갔던 건 소방관들이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현장에 근접해 목숨을 던지며 더 큰 피해를 막아낸 것도 소방관들이었다.

119 구급대원을 포함한 전국의 소방관은 4만2000여 명이다. 국민의 안전을 맡은 공무원인데 신분은 지방직이다. 국방과 치안을 담당하는 군인, 경찰, 검사는 국가직인데 이들만 따로 떨어져 있다. 국가직이란 국가에서 임용해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지방직은 시·군·구와 도에서 임용해 지방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세월호 참사 후 재난현장 지휘권을 지역 소방서장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국가직 군부대장이나 경찰서장이 지방직 서기관급 소방서장의 지휘를 받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재난구호체계 정비 차원에서도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은 필수이다.

국가직이냐 지방직이냐는 당장 예산 배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지자체는 안전 예산부터 줄인다. 지역별 불균형이 심하다. 서울의 119 구급차에는 3명의 소방관이 탑승하지만 지방에서는 평균 1.7명에 그친다. 인원이 부족해 보유한 소방차를 모두 출동시키지 못하는 지방 소방서가 부지기수다. 수당으로 지급할 돈이 없어 억지로 퇴근을 시키는 일까지 벌어진다. 현재 소방공무원은 법적 정원보다 1만9000명이나 부족한 실정이다.

119의 실제 업무 중 화재는 10% 미만에 그친다. 구급 요청에 응하거나 기타 출동이 대부분이다. 시민들은 화재뿐 아니라 어려움에 처하면 주저하지 않고 119를 부른다. 공무원 중 신뢰도 1위, 대학생들의 존경받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꼴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소방공무원들에게 물었더니 인력 부족과 장비 노후화가 시급한 현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5년 동안 33명의 소방관이 순직했고 16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도 경찰병원과 국군병원은 있지만 소방병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해 평균 7명의 소방관이 자살했고, 전체 소방관의 40% 정도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화마의 악영향이나 끔찍한 사고 처리 후 생기는 정신적·육체적 후유증 때문이다.

국회에는 이미 의원들이 발의한 소방공무원법 개정안이 여럿 계류돼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된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시도지사의 지방소방공무원 임용권을 폐지하고, 소방공무원 징계의결권을 국민안전처로 단일화하는 방안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1월 서울소방학교를 찾아가 훈련을 받던 교육생들에게 다부지게 약속을 했다. 소방관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모자라는 인원도 바로 충원하겠다고 했다. 국가직으로의 전환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세운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공약엔 소방인력 신규 채용이 맨 앞에 있다.
현장 경찰과 사회복지서비스 인력 확충도 있지만 나에겐 소방관 확충이 먼저 눈에 띄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소방관에 대한 관심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소방관 문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다른 이의 공약이라도 꼭 필요하다면 내칠 이유가 없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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