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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칼럼] 추락할 때 비로소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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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m 아래 강물은 아득한 심연 같았다. 번지점프를 했다. 두 발을 허공으로 떼는 순간 공포가 해일처럼 덮쳐왔다. 그 찰나에 뼈저린 후회가 엄습했다.
패닉의 순간은 물리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정말로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스쳐갔으니까. 나는 딱 한 번 해본 번지점프에 빗대 우리 경제를 설명하곤 했다. 사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국 경제성장률 그래프를 그려보면 번지 코드의 궤적을 꼭 닮았다. 우리는 몇 차례 큰 위기를 맞아 아득한 추락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V자형 반등을 기록했다. 그러나 회복탄력성은 자꾸만 떨어졌다.

지금 한국 경제는 어떤가. 증시 불안은 또 다른 추락의 전조인가. 한국 경제가 실제로 추락을 시작한 것이라면 바닥은 4.7m 아래일까, 47m 아래일까, 아니면 아예 바닥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것일까.

정부는 경제위기론을 일축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국정감사장에서 위기 대응을 묻는 질문이 잇따르자 "경제를 책임지는 제 입에서 위기란 말을 듣고 싶으냐"고 답했다. 위기론은 자기실현적이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주식시장 폭락에 대해서는 "패닉까지는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지금 한국 경제에 믿을 만한 도약대가 있는가. 도약은 고사하고 추락이라도 막아줄 튼튼한 받침대가 있는가. 받침대에 심각하게 금이 간 건 아닌가. 아니면 우리의 두 발은 이미 지지대를 잃고 허공에 떠 있는 건 아닌가.

과연 그렇다면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추락의 공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왜 그 숱한 경고를 새겨듣지 않았을까 후회할 것이다. 위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경고를 믿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한사코 믿지 않았던 걸, 지나친 희망적 사고와 확증편향으로 냉혹한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걸 자책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블랙 스완` 같은 위기가 아니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위기다. 우리는 인구 감소 효과를 상쇄하고 남을 만큼 혁신 역량을 키우지 못하면 성장잠재력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홍수처럼 불어났던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들면 지구촌 곳곳에서 비명이 터지고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의 설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궂은 날에 대비하지 않았다. 한국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떨어트리는 좀비기업들은 여전히 널려 있다. 집값이 조금만 떨어져도 과중한 빚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는 가계가 수두룩하다. 금리 정상화는 마냥 미루기만 해서 큰 위기가 터져도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여지가 별로 없다. 우리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믿어줄 것으로 생각했다. 환란 당시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자본은 9조달러였다. 지금은 30조달러에 이른다. 그들은 소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닌다. 그들에게 로드킬 당하지 않으려면 견고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 환란 때 바닥을 드러낸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에 이르렀다는 건 작은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데도 활황을 이어온 증시는 얼음 위의 불꽃이었을까. 가계의 소득창출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데도 일부 지역 집값이 폭등한 건 투기적 거품이었을까. 환란 후 지금보다 많은 공장이 멈춰 선 적이 없는데도 땅값이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뛴 까닭은 무엇일까.

`투자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은 "다른 이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다른 이들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지라"고 했다. 우리는 그동안 두려워해야 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 경제의 추락이 시작된 것이라면 다른 조언이 필요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 자체뿐"이라고 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과 경제정책 사령탑이 정말로 냉철하게 자문해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과연 우리에게 추락의 공포와 뒤늦은 후회를 피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을까.

[장경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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