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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칼럼] 2018~2028

  • 장경덕 
  • 입력 : 2018.09.05 00:07:01   수정 :2018.09.09 13: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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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5일 금요일. 월가는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다. 누구도 열흘 후의 대격변을 예고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어떻게든 금융위기를 수습하겠지, 모두가 그렇게 믿고 싶어했다. 벼랑 끝에 몰린 리먼브러더스 주가는 7% 올랐다.
하지만 새로운 주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리먼의 백기사로 떠올랐던 한국산업은행이 막판에 등을 돌렸다. 리먼 주가는 하루 새 반 토막이 났다. 그리고 9월 15일 밤 1시 45분 마침내 158년 전통의 글로벌 투자은행이 파산법원을 찾았다. 터키의 한 해 GDP와 맞먹는 빚을 지고 있던 리먼이 무너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한국도 거대한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피할 수 없었다. 코스피는 2007년 말 꼭지에서 57%나 추락했다.

그리고 10년. 그때의 악몽을 되살리고 싶은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먼 파산 10주년을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불과 열흘 후의 추락을 예상치 못했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도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발밑의 벼랑을 못 본 채 위험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 10년을 잠시 돌이켜보자. 그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컬럼비아대 역사학자 애덤 투즈가 쓴 `붕괴(Crashed)`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10년을 다룬 700쪽짜리 르포르타주다. 그는 금융위기가 각국 정치 지형까지 바꿔놓았다고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무엇보다 시장과 민주주의가 사이 좋게 손잡고 나아갈 수 있다는 탈냉전 시대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기존의 거버넌스와 엘리트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대중은 위기를 불러온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되레 더 잘나가는 금융가들에게 분노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더 큰 불평등을 낳는 글로벌 교역체제에 불만을 키웠다. 이는 포퓰리즘의 풍부한 자양분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도, 브렉시트도 금융위기가 키운 포퓰리즘의 산물이었다.

금융위기는 리버럴리즘의 위기를 불러왔다. 지난 10년 새 극좌나 극우 정치인은 득세했다. 중도는 설 자리를 잃었다. 자유시장 지킴이였던 미국 공화당조차 보호주의를 부르짖는 트럼프의 전횡을 용인했다. 위기가 터졌을 때 공화당은 야당이던 민주당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야당이 되자 초당적 협력은 사라졌다. 공화당은 전략적으로 대중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리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투즈의 분석을 읽다 보면 한국 상황이 고스란히 겹쳐진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불평등은 심화되는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대중, 대중의 신뢰와 지적 리더십을 잃은 지도자들,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진영 논리, 이는 얼마나 위험한 조합인가.

세계는 지난 10년 동안 더 안전해지기도 하고 더 위험해지기도 했다. 지구촌의 빚더미는 오히려 커졌다. 맥킨지 추산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부채(비금융기업과 정부, 가계 빚을 합한 금액)는 2007년 97조달러로 당시 GDP의 207%였다. 작년 상반기 그 규모는 169조달러, GDP의 236%로 불어났다. 중국의 빚은 10년 새 다섯 배로 불어나 약 30조달러에 이르렀다. 한국의 가계와 정부의 빚은 각각 두 배로 늘었다. 앞으로 위기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늘 얼굴을 바꿔서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 돌연변이와 전이에 대비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는 늘 그대로다. 특히 세 가지가 걱정스럽다.

하나. 글로벌 자본의 큰 흐름을 조망하지 못하고 국내의 편 가르기 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다.
예컨대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명분 싸움에 몰두하다 글로벌 위기의 쓰나미를 맞는다면 거대한 불도저 앞에서 서로 동전을 줍겠다고 다툰 꼴이 될 것이다.

둘. 문제의 본질인 사람은 보지 않고 추상적인 숫자놀음에 열중하고 있다. 어차피 그리 정밀하지도 않은 분기별 소득분배 통계를 놓고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낭비할 게 아니라 그 시간에 고용지원센터를 찾아 실직자 한 사람의 사연이라도 더 들어보는 게 어떤가.

셋. 정치 지도자들이 설득과 타협에 나서지 않고 자기 편에서 박수 받을 말만 한다. 서로가 상투적인 진영 논리만 웅변한다면 협치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 금융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전이된다. 우리도 구미 각국의 퇴행적 역사를 고스란히 되풀이할 건가.

[장경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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