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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칼럼] 헌법 32조, 일할 자유

  • 손현덕 
  • 입력 : 2018.06.26 17:34:22   수정 :2018.06.26 19: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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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는 고통이고, 유희는 쾌락이고, 휴식은 평온이라 한다면 그건 일종의 도그마다. 몽테뉴식 표현을 빌리자면 이성에 가장 합당한 지적 태도인 뒤흔들고, 따져보는 `회의(懷疑)`의 부족이며 파스칼을 인용하자면 권태와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소란과 법석을 갈구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의 결여다.

물론 근면이 미덕이었던 시절은 지나갔다. 일과 삶의 균형, 직장과 가정의 양립, 즉 워라밸이 이 시대의 트렌드라는 점도 분명하다.
근로시간 축소는 그래서 불가역적(不可逆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테뉴적 회의와 파스칼적 사색을 구할 부분이 있다. 그건 `일할 자유`다. 인간에게 일을 안 할 자유가 있듯이 일을 할 자유도 있다. 그 일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반(反)헌법적이다. 헌법 32조에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명기돼 있다. 내가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밥벌이 수단일 뿐이지"라고 하는 사람에겐 르네상스 시기 이 두 천재 철학자의 일침이 가해질 것이다. "근로가 주는 즐거움도 있고, 근로가 주는 삶의 가치도 있을 텐데"라는.

다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그 조건을 법률로 정할 뿐이다. 마치 헌법 119조 1항이 경제자유고 2항이 경제민주화인 것처럼, 근로의 권리가 32조 1항, 의무가 2항이고 근로조건의 보장이 3항이다.

4일 후부터 시행되는 주(週)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반대하는 국민이 제법 있다.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에서 일반 서민들의 절절한 사연들을 읽을 수 있다. "남편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었다네요. 일을 하지 못해서 깎인 월급은 어디서 받아야 합니까?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일할 수 있도록, 쉬고 싶은 사람은 쉴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책이 진정 국민이나 근로자들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서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통로까지 옥죄어 버리면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요." "주 52시간 근무로 잔업수당, 야근수당이 사라집니다. 이걸 보충하려고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리는데 어떻게 저녁 있는 삶이 되나요."

이들은 한결같이 일할 자유의 상실을 원망한다. 그 일이라는 게 생계를 위한 것이든,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구매력의 제공이든, 아니면 일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든 간에 그건 어디까지나 국민 개개인의 선택에 관한 문제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그런 개인의 선택권이 제한된다면 그걸 보정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 제도의 시행이 초래하는 문제점 중의 중요한 하나는 소득계층 간 갈등과 차별이다. 청와대에 호소문을 올린 국민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중·저소득 근로자들이다. 그들은 일을 좀 더 하더라도 돈을 벌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근로자들의 노동권을 지켜주는 강력한 노조가 이들 뒤에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한 노조는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제조업체나 금융기관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천사적 대의로 시작된 정책이 재앙을 초래하는 경우를 우리는 왕왕 목격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그 범주에 속한다. 문재인정부는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다. 그래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속과 처벌을 6개월 유예하기로 하는 보완대책을 실시할 예정이다. 계도기간이란 명목으로. 정말 이 6개월을 그 뜻 그대로 모르는 걸 깨우쳐주고 이끌어주는 진정한 `계도`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단속과 처벌을 잠정 중단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근로자들과 사업주들의 어려움을 듣고 그걸 해소하기 위해 컨설팅을 해줘야 한다. 그게 고용노동부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다.

얼마 전 고용부는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가이드북을 내놓았다. 계도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119쪽짜리 책을 보면서 과연 공무원들이 근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법을 어기려고 꾀를 내고자 하는 국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범죄자가 되지 않고 피해를 보지 않을까 고민하는 국민들이다. 그들을 보듬어 주는 정부여야 한다. 작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살피고, 그들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다짐한 문재인정부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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