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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칼럼] 합의의 틈새

  • 손현덕 
  • 입력 : 2018.05.15 17:34:51   수정 :2018.05.15 17: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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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미·북정상회담은 `99% 성공 보장`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쩌면 실패할지 모르나 어느 쪽도 실패라고 시인하지 않을 회담이다. 미국도, 북한도, 그리고 한국도. 굳이 1%를 뺀 건 혹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경우다. 아니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캄캄한 새벽녘 미국으로 귀환한 북한 억류자를 맞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언어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을 소개한 노동신문의 1면 편집. 이런 사실과 정황을 근거로 성공을 예감하는 걸 확증편향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미·북 정상의 싱가포르 만남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북한 핵 문제가 단칼에 해결될 것이란 기대는 금물이다. 만 하루도 안 되는 일정의 정상회담이 모든 걸 담아낼 수는 없다. 아마도 실천 로드맵이 도출될 것이다. 합의는 비록 단계적이 아니더라도 합의 이행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다.

명목이 아니라 실질적 성공을 위해선 로드맵이 명확해야 한다. 합의문에 적혀 있는 수많은 단어들의 `중의적` 해석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해석이 구구하면 억측을 잉태하고, 억측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1994년 미·북 간 제네바합의 때 비핵화 선언이 있었다. 기본합의서는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하고 그 대가로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이 들고나온 건 `고농축 우라늄`이었다. 미국이 난리를 쳤지만 북한은 합의서 어디에 `고농축`이 있느냐고 반발했다. 비핵화에 당연히 고농축 우라늄도 포함되는 것이라는 미국과 논란을 벌이게 된다.

2012년 2월 미국과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에 대한 합의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첫 임기 마지막 협상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미사일 시험 중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합의는 6주 만에 물거품이 된다. 그것이 평안북도 동창리에서 발사된 은하3호였다. 북한은 이를 인공위성이라 주장했다. 결국 이런 애매한 합의는 2017년 ICBM 개발 완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만큼 표현의 명확성이 중요하다. 그랜드바겐(통 큰 합의)의 의미를 깎아내리자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북한이 지금 몇 개의 핵무기를 보유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디다 보관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걸 검증하고, 폐기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사이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걸 막아주는 것이 합의문의 명료성이다.

미·중 정상 간에 한반도 비핵화 합의가 도출되고 나면 그에 대한 부담은 어림잡아 트럼프 대통령이 90%, 김 위원장은 10%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건 "합의가 깨져도 우리는 아쉬울 것이 없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낸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탈퇴를 선언한 것은 "우리는 불충분한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낸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누가 칼자루를 쥘지, 누가 칼끝을 쥘지 감이 잡힌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은 2년 정도다.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 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있다. 이에 반해 김 위원장의 시간은 10배, 20배는 된다. 그래서 합의문에 `숫자`가 나와야 진짜 성공이다. 숫자 대신 외교가에서 흔히 통용되는 `지체 없이(without delay)`란 표현이 들어갈지 모른다. 이 역시 모호성이 있다.

물론 현재 진행되는 북한 핵 협상은 과거와는 판이하다. 처음으로 톱다운 방식으로 시작됐다. `선(先)핵 폐기, 후(後)평화`였으나 이제는 평화를 내세워 핵 폐기란 난제를 풀려고 한다. 가장 큰 변화는 불과 3개월 만에 김 위원장의 별칭이 `로켓맨`에서 `훌륭한(honorable)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과거 패턴에 얽매지 않는 최고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냉정해져야 한다.
다윗의 시련은 골리앗을 이긴 뒤에 시작됐듯이 어쩌면 우리의 시련도 북한이 극적으로 변화한 때부터 시작될지 모른다. 먼저 들뜨면 안 된다. 뜸을 좀 들여도 틈새를 막고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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