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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 칼럼] 붙인 하늘

  • 손현덕 
  • 입력 : 2018.05.01 17:47:39   수정 :2018.05.01 23: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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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줄이 없습니다. 땅은 비록 금을 그어 둘로 나누어 놓았지만 하늘은 하나로 붙어 있습니다. 몸은 비록 다른 세상에 살아 남에서 북으로, 또 북에서 남으로 넘어가지 못하지만 반대편의 하늘만큼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겐 그 하늘조차 나뉘어 있습니다.
북쪽에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들, 남으로 내려온 그 실향민을 그리워하는 가족들, 그리고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과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 그들에겐 땅만 나뉘어 있는 게 아닙니다. 하늘까지 나뉘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어찌 그들뿐만이겠습니까? 지난주 그 하늘이 붙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자 그를 기다리던 문재인 대통령이 다가갔습니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 간 악수지만 무척이나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오전 9시 30분부터 만찬을 마치고 헤어지기까지 12시간 가까이 되는 만남에서 참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날의 광경을 지켜보면서 저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되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손을 잡고 북한 땅으로 넘어가는 거였습니다. 금을 넘어가면서 북을 바라보는 그들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나뉜 북한의 땅과 북녘 하늘을 변화시킬 의지를 애써 읽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 나라의 지도자, 다른 한 사람은 같은 민족 다른 나라의 지도자, 그들 두 사람은 과연 같은 곳을 바라보았을까요?

저는 이날 독일에 있었습니다. 현지시간 새벽에 벌어진 일입니다. 휴대전화에 쉴 새 없이 문자가 들어오고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그날 저녁 독일 공영방송이 통상 15분 정도 메인 뉴스를 진행하는데 남북정상회담 뉴스를 5분 이상이나 보도했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하루 전날 독일의 최대 일간지에서는 1면에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대성동초등학교에 걸린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내보냈습니다. 분단의 아픔을 겪고 결국 통일을 이룬 독일인들에겐 언젠가는 통일된 나라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갈 이 어린 학생들의 꿈이 오히려 가슴에 와 닿았나 싶습니다.

우리의 판문점은 그들에겐 베를린 장벽입니다. 과거 서베를린을 둘러싼 장벽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이제 그 흔적은 몇 군데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의 벽은 세계 각국 화가들의 작품으로 형형색색 치장됐습니다만 오히려 그 화려함이 저에겐 비장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독일 출장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만 동행한 독일 친구는 한반도의 상황이 몹시나 궁금했나 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에게 정상회담 내용을 물어보고 반대로 독일의 경험을 들려줬습니다. 그러고는 그 `하늘` 얘기를 합니다.

독일 말로는 하늘이 `히멜(himmel)`입니다. 그런데 히멜이란 단어는 중의적입니다. 하나는 하늘(sky)이란 의미이고 다른 뜻으론 천국(heaven)입니다. 5년여 전에 작고한 독일 작가 중 크리스타 볼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독 출신인 그녀의 유명한 작품이 `나뉜 하늘(Der Geteilte Himmel)`입니다.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둔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갑자기 쳐진 장벽이 베를린 동쪽에 같이 살던 두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만프레트라는 남자 주인공이 서독으로 간 사이 금이 그어집니다. 땅이 나뉩니다. 여자 주인공 리타는 동독에 남습니다. 이제 벽 주변엔 군인들이 배치되고 월경을 하는 주민들에겐 총격이 가해집니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합니다. 베를린에 있는 슈프레 강가에서 만프레트가 리타를 그리워하며 독백을 합니다. "그들이 하늘(himmel)을 나눠놓지는 못했네"라고. 같은 시간 동독에 남은 리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그들은 천국(himmel)부터 나눠놓았는걸"이라고. 그 독일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년이든, 10년 뒤든, 아니면 50년 뒤든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겁니다. 독일이 그랬듯이. 하늘이 붙으면 결국 땅도 붙습니다"라고.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는데 그 말이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돕니다.

"넘치는 감상과 감정을 누르고 차분해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더 잔인한 날들이 기다릴 겁니다."

[손현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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